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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차라리 오지마라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강원국제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전시기획자들이 감동받는 경우는 작품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보는 관람객을 만날 때이다. 그렇기에 얼마 전 깜깜한 공간에서 1시간도 넘는 영상작품을 네댓 번이나 시청하던 일부 관람객의 모습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반면 채 30분도 안 되어 10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모두 봤다며 출구로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거나 '안 봐도 다 아는' 부류일 것이다. 작품해석에 있어 나와 다른 내공을 지닌 것이니 섭섭할 것도 없다.

다만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경향을 파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예술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정책에 반영해야 함에도 그저 시끌벅적하게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정치인들을 만나는 건 노곤하다. 그 의미 없는 행차에 비례한 실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난 14일,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강원국제비엔날레'를 찾았다. 전시장을 방문한다는 정보는 당일 아침에서야 전달됐다. 이건 거의 통보였다. 미리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나랏일로 바쁜 사람이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필자는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일단 거주지에서 전시장이 위치한 강릉까진 멀어도 너무 멀었다. 또한, 그게 어디든 정치인들의 방문은 대체로 형식적이었다. 그 때문에 굳이 가깝지도 않은 길을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부랴부랴 300㎞를 달려갔다. 장관이기 이전에 예술인이니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고, 젊은 시절 닳고 닳도록 읽은 '접시꽃 당신'으로 인한 '팬심'도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를 달리게 된 이유였다.

도종환 장관은 시리아 작가인 압둘라 알 오마리와 태백 출신인 고(故) 정연삼 작가, 장지아 작가 등 몇몇 작가의 작품에 시선을 두었다. 질문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질문은 놀랍게도 "비엔날레 주제가 뭐죠?"였다.

비엔날레에서 주제란 행사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이고, 전시의 성격을 묶는 핵심 키워드이다. 그런데 그는 3층 전시장을 모두 돌아볼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이는 마치 시낭송회에서 시를 읊고 있는 시인이 누구인지, 어떤 시를 썼는지 깜깜한 채 듣고 있는 것과 같다.

장관은 결례한 것이 맞다. 장관이 들릴 행사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보좌관들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다른 이들도 아닌, 동계올림픽을 대표하는 문화예술행사에 문화예술 관련 주무 부처 관계자들로 왔기에 그렇다.

난 그때야 왜 장관의 입이 유독 무거운지 알아차렸다. 물론 약간의 대화도 있었다. 하지만 총감독 앉혀 놓고 약 30분 동안 '그들끼리' 나눈 얘기라곤 산불뿐이었다. 내용만 보면 문체부 관계자들은 비엔날레가 아니라 산림청이나 소방청을 방문했어야 했다.

필자는 누구보다 깊게 예술을 이해해야 할 직업인으로 정치인을 꼽는다. 늘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법률·정책·방침 등이 현실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태도는 오히려 일반인보다 못하다. 영상작품 하나 끝까지 보지 않을뿐더러, 작가들과의 만남조차 마련하지 않는다. 의례적으로 왔다가 서둘러 자리를 뜬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정치인은 가급적 전시장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심도 없는데 왜 세금 들여 전시장을 찾나. 맞이하는 이들도 힘들다. VIP 의전이라는 전근대적 악습을 되풀이하는 것도, 국민의 공복을 국민이 모셔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죄다 마음에 안 든다.

홍경한(미술평론가·강원국제비엔날레 예술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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