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출소 후 첫 인수합병(M&A)에 네덜란드 자동차 반도체 전문기업 엔엑스피(NXP)가 거론되고 있어 재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동차 부품사업(전장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하만(HARMAN)을 지난해 3월 약 8조원에 사들였지만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이렇다 할 추진력을 못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장 사업에 대해 개방성으로 다양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지만 자율주행차 등 커넥티드 카 기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전장부품 사업 기술력을 가진 회사를 M&A하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엔엑스피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4일 증권 업계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엔엑스피의 최대주주인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에 퀄컴이 인수를 진행 중인 엔엑스피에 대해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취지의 레터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모바일 통신, 블루투스 반도체 분야 1위인 퀄컴은 지난 2016년 10월부터 엔엑스피를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업체(파운더리)인 엔엑스피는 60년 전 필립스의 반도체 자회사로 시작해 2015년 자동차용 반도체 회사 프리스케일을 인수하면서 자동차 반도체 시장 1위 업체로 자리 잡았다. 매출의 30% 이상을 자동차용 칩에서 거둘 만큼 이 분야의 강자로 꼽힌다.
그러나 컬컴의 엔엑스피 인수는 반독점 규제 탓에 장기간 표류 중이다. 유럽과 우리나라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기는 했지만 중국 정부의 승인은 오리무중이다.
여기에 싱가포르의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퀄컴에 대해 적대적 인수에 나서면서 엔엑스피 인수는 다시 혼전양산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엘리엇의 제안이 나오면서 세계가 삼성전자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2016년 엔엑스피 M&A를 검토한 적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엔엑스피 인수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방향을 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엔엑스피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2016년 569억달러(61조4500억원)에서 2022년 766억달러(82조7300억원)으로 성장할 전망된다.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라선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도 업계를 선도하겠다는 목표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엔엑스피는 매력적인 기업이다.
여기에 엔엑스피는 삼성전자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전장분야에 특화돼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만을 인수했지만 이 부회장 구속으로 인해 이렇다 할 시너지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초 열린 CES 2018에서 삼성전자는 하만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디지털 콕핏'을 선보이며 '개방성'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이를 결과로 이끌어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 당시 전장기업으로 나아가겠다는 방향을 제시한 상황에서 엔엑스피 인수는 관련 분야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M&A가 활발하다. 자체적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모두 확보하려면 막대한 시간이 걸리고 인력 확보도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 역시 이런 점에 있어서는 크게 차이가 없고, 퀄컴이 엔엑스피를 인수하려던 2016년과는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며 "이 부회장이 출소 후 전장사업에 대한 뚜렷한 방향성을 원하는 투자자들을 위해 엔엑스피 인수는 삼성전자가 관심 가져볼만한 기업"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