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변방'이나 '비주류' 취급을 받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여론이 사회개혁의 '잔 다르크(백년전쟁 당시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투 열풍, 평창 단일팀 논란, 비트코인 규제 반대 운동 뒤에는 SNS 즉 1인 미디어가 있었다. 소셜 미디어가 전통 언론을 넘어선 것은 옛말이 되버렸다.
6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45.5%가 SNS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미디어 수용자에서 벗어나 2200만 개의 1인 미디어가 되어 직접 뉴스를 생산하고 여론을 만들며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약자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는 소셜 미디어의 순기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의 함정을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미투 운동, 국민의 88.6%가 지지
지난 1월 14일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윤택 연출가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다./ 김수희 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제라도 이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내가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지난 1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윤택 연출가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글을 'metoo(미투)'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며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SNS를 통해 빠르게 사회 전반에 확산됐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번진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 사이에서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강력한 지지층을 만들어냈다.
미투 운동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88.6%(강력히 지지함 32.8%, 지지하는 편임 55.8%)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19~22일 전국 성인 남녀 10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투 운동에 대한 국민 인식' 여론 조사 결과(95% 신뢰 수준 ±3.0%포인트)를 보면, 응답자의 88.6%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투 운동의 전개 양상에 대해서는 조사 대상의 63.5%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캠페인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이는 '일시적 유행처럼 지나갈 것 같다'라는 부정적 응답에 비해 27%p 높은 수치다. 현재 미투 운동은 SNS상에서 콘크리트 지지층을 만들어가며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남북단일팀 분노··· 文 지지율 50%대로 추락
정부가 추진한 남북 단일팀에 반발해 SNS상에서 시작된 '김정은 화형식' 릴레이 캠페인은 당시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 캡처
지난달 17일 정부가 북한과 여자아이스하키 종목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SNS상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사진과 인공기를 불태우거나 찢는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유튜브에는 6500개가 넘는 '김정은 화형식' 영상이 올라왔고, 누적 조회수는 200만을 돌파했다.
남북 단일팀 추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 서울의 모 사립대학교 '대나무숲(익명 페이스북)'에는 "해당 팀 선수들과 일절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인 합의로 단일팀이 구성된 것에 대해 화가 난다. 이것이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것인가?"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는 등 사람들은 직접 SNS에 뉴스를 만들어 퍼뜨렸다.
소셜 미디어 여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리얼미터가 1월 4주 차 전국 성인남녀 15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 ±2.5%포인트)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59.8%로 취임 후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다.
◆가상화폐 규제 반대, "총선때보자"
지난 1월 31일 '총선때보자'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네이버 데이터랩 캡처
SNS 여론은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위력을 과시했다. 지난 1월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암호화폐 투자자(코이너)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거래소 폐쇄에 대한 반대 여론을 만들어냈다.
코이너들은 가상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SNS에 공유하며 20만 명의 동의를 얻어냈다. 정부는 소셜 미디어 여론이 악화되자 나흘 만에 "거래소 폐쇄 방안은 향후 충분한 협의와 의견 조율 과정을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같은 달 31일에는 네이버 비트코인 카페에서 한 회원의 주동 하에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 정책에 항의하는 뜻으로 "총선때보자"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포퓰리즘적 한계 극복이 과제
SNS, 1인 미디어가 기성 언론을 뛰어넘어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주요 언론사만이 갖고 있던 의제설정 권한이 소셜 미디어로 옮겨가고 있는 양상이다. 미디어 수용자였던 사람들이 직접 뉴스를 생산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신성호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과거 신문·방송 등 전통매체에 접근이 어려웠던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SNS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며 소셜 미디어가 가져온 사회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신 교수는 또 "뉴스 생산자의 관심 분야가 각자 달라 콘텐츠들이 매우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신 교수는 "1일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주장 혹은 비판의 경우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대중영합적(포퓰리즘적)으로 흐르기 쉽다"며 소셜 미디어의 한계를 지적했다.
나은영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역시 "정확한 여론을 알기 위해서는 SNS상에서 '많은 발언을 하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며 "반대되는 시각을 보여주는 미디어도 함께 이용함으로써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