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리 정부의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철회와 피해 보상 요청을 끝내 수용하지 않자 정부의 미국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의 통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역량을 더욱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3일 서명한 세이프가드 포고문(proclamation)이 지난 4일로 40일이 지났지만 미국은 세이프가드 내용을 수정하겠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다.
미국의 세이프가드 포고문은 대통령의 발표 30일 이내에 WTO 회원국과 협의를 통해 세이프가드를 축소·수정 및 종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그 내용을 40일 이내에 발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의 발표가 없다는 것은 미국이 우리 정부의 세이프가드 완화 및 철회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 24일 미 무역대표부(USTR)에 양자협의를 요청, 세이프가드가 WTO 관련 협정에 합치하지 않는 과도한 조치라는 점을 지적하고 조치의 완화 및 철회를 요청했다.
또 WTO 세이프가드 협정 8.1조를 근거로 세이프가드로 인해 국내 업계에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요청했다.
세이프가드 협정은 세이프가드 발동국이 세이프가드로 피해를 보는 수출국에 다른 품목 관세 인하 등 적절한 방식으로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출국은 30일 이내에 보상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세이프가드 피해 금액만큼 발동국에 관세양허 정지(축소하거나 없앤 관세를 다시 부과) 등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다.
다만 보복 조치는 피해국이 WTO 제소에서 승소하지 않는 한 3년 동안 할 수 없다.
정부는 양자협의에서 소득이 없으면 양허 정지와 WTO 분쟁해결절차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번 밝혀왔다.
산업부 관계자는 "양자협의는 사실상 끝났다"면서 "미국을 WTO에 제소할 요건은 충족됐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최근 철강 관세 등 미국의 신 보호무역주의에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계속 커지자 정부가 대미 통상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통상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관료 조직의 경우 문호가 개방된 미국과 달리 고시 출신 중심으로 돌아가고, 인사 제도가 경직돼 민간 영역의 다양한 인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기업도 정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통상 전문 인력을 키우고 통상문제를 최소화하는 형태로 투자나 수급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통상 전문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인 미국과 우리나라의 통상 역량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만큼 힘의 차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는 "특히 통상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통상 조직을 보강하는 기존 모습에서 탈피해 정부와 기업이 평소에 미국 관련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미리 대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