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0시간 이하, 5일 이하 근무 등 요구…"유연근무제, 실효성 없어"
금융 노조의 '주 4일 근무·점심시간 1시간' 요구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원의 근무 시간이 단축되면 고객의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특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바람이 불면서 대부분의 은행이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어 노조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권의 '귀족 노조'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25일 금융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노조는 최근 열린 산별중앙교섭에서 ▲연장근무를 포함한 주당 근로시간 52시간 초과 금지 ▲주 40시간 이하, 5일 이하 근무(사실상 주4일) ▲휴게시간(점심시간) 1시간 보장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 60세 ▲신규인력 채용확대 의무화 등을 요구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올 하반기부터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조기 시행을 요구한 것이다. 은행은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내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이를 앞당기겠다는 의도다.
정부도 힘을 보탰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9일 시중은행장들과 만나 '노동시장 단축 관련 은행업종 간담회'를 열고 신규채용을 늘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조속히 도입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금융노조 허권 위원장은 "일부 은행원은 기존에 정해진 업무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라며 "특히 근로기준법에도 명시돼 있는 휴게시간 1시간을 다 사용하지 못하고 김밥 등으로 대충 점심 식사를 때우는 일이 많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사용자 측의 입장은 달랐다.
노조 요구안 중 근무시간 단축은 사실상 주 4일 근무인데, 통상 은행 영업점은 오후 4시에 창구 문을 닫아 고객의 업무 처리를 모두 수용하기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1시간 휴게시간까지 도입되면 점심시간을 이용해야만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직장인 등의 불편도 예상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라는 시선이 지배적인 이유다.
특히 은행들이 이미 유연근무제 등을 도입·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조의 무리한 요구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연근무제는 주 5일 전일제 근무 대신 재택근무, 시간제, 요일제 등 근무 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신한은행은 스마트재택근무, 스마트워킹센터 근무, 자율출퇴근 등 유연근무제를 가장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출근 시간을 오전 8시 30분, 9시 30분, 10시 30분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은행은 2교대 근무제를 실시하고 기업·SC제일·산업은행은 시차출퇴근제를 도입했다. 씨티은행은 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율근무제를 운영 중이다.
4대 시중은행 2017년 말 기준 임직원 연봉 현황./전자공시시스템
이 밖에 은행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한 '자녀돌봄 10시 출근제'나 'PC오프(off)제'. '가정의 날' 등 정시 퇴근 장려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각에선 은행원들이 고액 연봉은 유지하면서 근로시간만 줄이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신한·우리·KEB하나·KB국민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1인 평균 급여액은 9025만원에 달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2016년 금융인력 기초통계분석' 자료에 따르면 연봉 1억원 이상인 금융사 직원의 비중은 전체의 24.8%였다. 금융권 종사자 4명 중 1명이 억대연봉자인 셈인데 이중에서도 억대연봉자 비중이 가장 높은 업권이 은행(32.9%)이었다.
한 은행 노조원은 "사용자 측에선 유연근무제나 단축근무제 등을 운영하는 것으로 은행원들의 워라밸을 높였다고 어필하고 있지만 전 영업점으로 확대하지도 않았고 특정 부서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노조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에 대해선 강경하게 밀어 붙이겠다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그러나 겉으로 비춰지는 모습이 아닌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서 대책을 마련할 시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