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IB 부문 경험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과 선의의 경쟁 기대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한국증권에서 12년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활약해온 유상호 사장(증권 부회장) 후임에 정일문 부사장을 내정했다. 유 사장이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셈이다.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에 선 한국투자증권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자은행(IB) 체질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에 이어 두 번째 'IB 전문가' 증권사 대표가 탄생한 만큼 두 사람의 선의의 경쟁 구도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25일 한국투자증권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3일 새 임원인사를 단행한 한국투자증권은 조만간 후속 임원인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년 넘게 IB 부문에서 활약해온 정일문 부사장을 신임 대표로 내정했다.
◆ 초대형 IB 선두 굳힐까?
한국투자증권은 올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 4109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3분기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2.3%로 국내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IB 가운데 독보적인 1위다. 돈을 '많이 버는 것'뿐만 아니라, '잘 버는 증권사'임을 증명한 것이다.
아울러 '1호 초대형 IB' 타이틀을 거머쥔 만큼 발행어음 사업 역시 순항하고 있다. 9월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 판매액은 3조45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순항하는 배에 올라 탄 정일문 사장 내정자의 어깨는 무겁다. 하지만 그가 20년 이상 한국투자증권의 IB부문을 강화시켜온 주역인 만큼 업계 기대는 크다.
정 부사장은 1988년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동원증권에 입사해 주식자본시장(ECM)부, IB본부, 기업금융본부 등을 거치며 2015년까지 30년 가까이 IB분야에서 실력을 쌓은 정통 IB맨이다.
특히 기업금융본부장 재직 시절에는 삼성SDS,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의 딜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고 국내 사상 최대 딜(deal)로 공모규모만 4조8881억원에 달했던 삼성생명 IPO를 주관하면서 IPO 시장의 최고 실력자로 이름을 알렸다.
또 한국투자증권이 IB 명가로 불리게 된 것에는 정 부사장이 2004년 결성한 '진우회(眞友會)'의 역할이 컸다. 이는 상장을 준비하는 중견·중소 및 벤처기업 CEO들의 정보 공유 모임이다. 진우회는 애초 친목모임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IPO의 산실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 진우회를 거쳐 상장한 기업만 80여개를 넘어섰다.
정 부사장은 2016년부터 개인고객그룹 부문을 이끌면서 리테일 부문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 개인고객그룹장을 맡은 뒤 90여개가 넘는 전국의 자산관리(WM)지점을 직접 돌아다닌 것은 그의 부지런함을 증명하는 유명한 후일담이다.
이후 '주식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위주의 리테일 영업이 주를 이뤘던 한국투자증권이 WM 부문에서도 힘을 받기 시작했다.
올 3분기 실적을 기준으로 브로커리지 부문(22.4%), 투자은행 부문(22.4%), 자산운용(Trading) 부문(21.6%), 자산관리 부문(13.7%) 등 균형 잡힌 수익성을 기록한 비결도 정 부사장의 성과와 무관치 않다.
정 부사장에 대한 내부 임직원들 평가도 긍정적이다. IB 전문성에 리테일 경험까지 더해져 한국투자증권 미래 먹거리 사업에 적합한 리더라는 평가다.
◆ IB 전문가의 격돌
올해 상반기까지는 증시 활황에 따라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사상최고 실적을 기록하는 등 견조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주가가 급락하고 '베어마켓'(대세 하락장) 진입을 우려하는 시각이 나오면서 내년 실적이 증권사 체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로 보인다. 증권사의 IB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이에 따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과의 선의의 경쟁도 기대된다. 현재 국내 초대형 IB의 핵심 업무인 발행어음을 승인받은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이 유일하다. 게다가 정일문 부사장은 'IB 1세대' 정영채 사장 취임 이후 증권업계에 등장한 두 번째 IB전문가 CEO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는 증권업계가 새 판을 짜야하는 시기로 보고 있다"면서 "두 대표의 IB 역량이 본격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