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잿빛 경제전망에 대기업들이 신용등급 하락 걱정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신용평가사의 '칼날'이 매서워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최근 신용등급 상승 기조가 둔화된 가운데 '네거티브' 딱지가 붙은 'AA'급 우량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평사들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부정적 관찰대상(네거티브)에 올리고 3~6개월 사이에 등급을 강등한다.
2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가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린 'AA'급 기업은 8개사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경고장을 받은 곳도 각각 7개사와 8개사다.
최근 신평사들이 기업 신용등급을 네거티브에 올리고 실제 등급을 하락하는데 걸리는 시간적인 간격도 짧아지는 모습이다.
국내 대기업 계열의 한 임원은 "반도체 경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경제 전반에 저성장의 그림자가 짙은데 우리라고 좋을 까닥이 있겠는가. 이대로 가다간 구조조정해야 할 판이다"면서 "설비투자라도 늘리려면 외부 자금을 끌어써야 하는데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그만큼 비용이 늘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신용가사 무디스는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국내 비금융 민간기업 23개사 중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 4개사와 SK텔레콤을 '부정적' 등급 전망 대상에 올려놨다.
크리스 박 무디스 기업평가담당 이사는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대해서는 최근 실적이 많이 저하됐고 향후에도 실적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이는 점을, SK텔레콤은 올해 대규모 인수합병과 더불어 수익성이 약화한 부분을 각각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내년이 걱정이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이달 초 '2019년 한국경제 대전망'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가 단기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동반한 물가 상승), 중기적으로 고실업, 장기적으로는 성장과 복지, 재정 건전성의 트릴레마(trilemma·동시에 세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한 것은 국내 경기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등 공급 측면에서 비용이 높아지는 쇼크가 발생하면서 실질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와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2.7%, 2.8%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 9월에 내놨던 전망치를 유지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를 2.6%로 기존보다 0.3%포인트 낮췄다.
그렇다면 어떤 업종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까.
한국신용평가는 단기 업황 전망이 우호적인 국내 업종으로 메모리반도체를, 비우호적인 업종으로 자동차·조선·유통·건설을 꼽았다. 유건 한신평 기업평가본부장은 "전반적으로 국내 기업 수익성이나 재무건전성을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좋은 상황이지만 매출 증가 지표를 보면 둔화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 부각되는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이나 외부환경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향후 업황이 좋아지는 업종보다는 나빠지는 업종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증권 박진영 연구원은 "올해 등급 상향을 이끌었던 화학, 철강, 건설 등을 비롯한 전반적인 기업 실적 둔화 가능성이 있다. 상징적이라 할 수 있는 현대차의 등급 하향 가능성이 부각된다"면서 "다만 신용등급 상향추세가 둔화된 것이지 신용등급 방향성이 급격하게 하락 전환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신용등급과 채권 평가가격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채권가격은 자동적으로 하락한다. 네거티브 딱지가 붙은 경우 등급하락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이 인수를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