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분야 52시간 근무, 정답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 김나인 기자
"판호(라이선스) 문제로 중국 게임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어 경쟁을 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입니다. 기업의 경쟁력에 해가 되지 않도록 게임 산업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이에 맞는 가이드라인이 설정돼야 합니다."(안병도 한국게임산업협회 선임연구원)
"소프트웨어(SW) 기업의 경우 하반기에 초과근무를 집중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비스 오픈이 코앞인데 52시간 맞춰 퇴근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렵습니다. 근로시간을 늘리라는 것이 아니라 유연성을 강화시키는 방안이 필요합니다."(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
지난 7월부터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에 적용된 '주 52시간 근무제도' 시행 5개월이 지났다.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도입 여파가 시스템통합(SI) 업체, 게임 업계 등 정보통신기술(ICT) 전반으로 확산된 가운데 정책을 손질해 달라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규모 프로젝트가 몰려있는 업계 특성 상 일괄적인 제도 도입은 산업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해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3일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ICT분야 52시간 근무, 정답인가?(저녁이 있는 삶과 선택근로제를 중심으로)' 정책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ICT 업계 관계자들의 아우성이 쏟아졌다. 이 자리에서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예외 규정 도입, 정산기간 연장 필요성 등이 언급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병태 카이스트(KAIST)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무차별적으로 도입하면 오히려 저녁 먹을 시간도 없는 삶이 도래한다"며 "SW 산업 특성 상 대형 프로젝트를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고 현업이 돌아가는 중간에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근로시간을 똑같이 도입하는 것은 시장에서 수용 여건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지식노동이 증가했는데 무조건 시간과 공간으로 근무환경을 관리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ICT 업계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산업 현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ICT 업계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채택하고 있다. 유연 근로제의 일종으로 한 달간 근무시간을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다만 한 달 단위로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최대 52시간을 넘으면 안된다.
업계에서는 이 정산 기간을 늘려달라고 지적하고 있다. 단위 기간이 한 달이면, 대형 프로젝트가 몰려 바쁜 하반기에는 기준을 맞출 수 없다는 목소리다.
채효근 한국 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는 "수주형 산업은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사업 시간을 예측하지 못한다"며 "정산 기간이 한 달로 돼 있는데 3개월, 6개월로 늘리는 등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병도 한국게임산업협회 선임연구원은 "주 52시간 근로제도 정착을 위해서라도 각 콘텐츠 산업에 맞는 기준과 게임 산업 가이드라인 설정이 필요하다"며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의 경우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최대 단위 기간을 최대 1년으로 설정하고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내부 검토 해보겠다는 입장이다. 곽병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산업과 과장은 "법 제도 시행에 앞서 ICT와 SW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를 통해 해법을 제시·진행하기도 했다"며 "정산 기간 연장의 경우 제도상 가능한 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직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과장은 "업계의 애로사항에 대해 공감한다"며 "주무부처도 노동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직접 내릴 수 없어 답을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