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역사학계가 22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대한민국 탄생'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다/박광온 의원실
[b]기해년 3월 1일에 맞이하는 3·1절은 특별하다. 일제 식민지 시기인 1919년 3월 1일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전국민 독립운동인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 운동을 전후로 독립에 대한 민족적 갈망이 극대화하면서 그 해 9월 중국 상해를 거점으로 개헌형식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올해는 3·1절뿐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지향했던 가치들을 재정립하고 다가올 100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메트로신문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연간기획으로 유서 깊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역사에 돋보기를 비춰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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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성과는 '대한민국 수립'이다. 새 나라를 이끌 주인은 3·1운동에 참여한 국민임을 모두가 깨달았던 계기였다. (이에)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호를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인 '대한제국'에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의미하는 '대한민국'으로 바뀌게 됐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겸 당 한반도새백년준비위원장이 지난 21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3·1혁명과 대한민국 탄생' 학술토론회 때 언급한 발언이다.
박 위원장이 '국민'의 중요성을 부각했듯, 이번 토론회에서는 3·1운동에 따른 '민주공화국 탄생'과 '민주시민 출현'의 중요성을 놓고 정계와 학계가 합창하는 풍경이 그려졌다.
전상숙 광운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민주공화국의 탄생'이란 발표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 근대 국가관은 3·1운동을 통해서 분출된 '민족의 독립' 및 '근대적 독립국가 건설 지향이 응집된 민중의 이상향'이었다"고 해석했다.
전 교수는 계속해서 "분단체제에서도 한국인들은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정립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가를 발전시켰다. (다만) 냉전이 와해된 후 한국인들은 남한과 북한으로 각각 하나의 주권을 갖는 주체로서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이러한 현실은 해방정국에서 '완전한 독립'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는 학술토론회 발제 때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을 이끌던 주체들이 '민주시민'이었음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 '미래세대 민주시민 양성'이란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양성 방법으로는 '어린이운동'을 예로 들었다.
'아동문학가'이자 '아동보호운동가'인 소파 방정환 선생은 아이·꼬마·어린애·아해놈 등 비칭에서 벗어나 그 계층을 아우르는 개념체계를 '어린이'로 통일, 어린이를 인격주체를 부르는 높임말로 격상시켰다.
김 교수는 "(방 선생의) 어린이운동은 어린이의 인권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민주주의적 삶과 문화를 심어줬다. 이러한 어린이운동이 민주시민을 키우는 교육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했다.
김 교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 '미래세대 민주시민 양성'을 꼽기도 했다. 양성 방법으로는 '어린이운동'을 예로 들었다. '아동문학가'이자 '아동보호운동가'인 소파 방정환 선생은 아이·꼬마·어린애·아해놈 등 비칭에서 벗어나 그 계층을 아우르는 개념체계를 '어린이'로 통일, 어린이를 인격주체를 부르는 높임말로 격상시켰다.
김 교수는 "(방 선생의) 어린이운동은 어린이의 인권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민주주의적 삶과 문화를 심어줬다. 이러한 어린이운동이 민주시민을 키우는 교육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했다.
한편 3·1운동의 명칭을 '3·1혁명'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번 토론회 축사 때 "사회과학에서는 보통 '혁명'은 가치관이 변하고, 비폭력적으로 이뤄지고, 광범위한 대중운동이 이뤄질 때,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의 국체가 변할 때 규정한다"며 "3·1운동을 되짚어보면 그 말이 딱 맞다. 국민의 10%가 운동에 참여했고, '대한제국' 명칭이 '대한민국'으로 바뀌면서 봉건제에서 공화제로 바뀌는 전환이 있었다"고 이렇게 주장했다.
윤경로 한성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역시 "100년이란 시간이 흐른 현재 그간 신성시해온 '3·1운동'이란 용어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볼 필요가 있다. 일종의 역사인식의 변화라 하겠다"며 "3·1운동이 지닌 역사적 무게를 생각할 때 그렇게 많았던 여러 운동들의 하나로 보는 게 우리 스스로 '3·1운동을 비하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