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Next) 한진칼'에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한국 주식시장에서 '행동주의'는 외국계 자본의 전유물이었다. '먹튀', '벌처펀드'로 불렸던 소버린·칼 아이칸·엘리엇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스튜어드십코드(stewardship code·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 도입 등이 본격화하면서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시장에선 한진칼과 KCGI의 의결권 싸움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는 18일 이후부터 '넥스트(Next) 한진칼'과 '한국형 행동주의'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커질 전망이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싸움을 벌이는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외국계 행동주의가 '돈' 이상을 보여주지 못해서다.
전문가들은 경영권 분쟁 등을 통해 단기차익만을 노리는 벌처펀드와 기업가치를 끌어 올리는 천사표 '행동주의'에 대한 투자자들의 혜안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한다. 기업, 투자자, 수익자 모두를 위한 '윈윈게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자칫 개미들이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토사구팽' 당할 수 있어서다.
5일 재계와 증권가에 따르면 2019년 증시 최대 화두로 '주주참여 확대 및 주주환원 증대'가 떠올랐다.
당장 3월에 예정된 한진칼 주총에 이어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를 활용한 주주활동 확대가 예상된다. 또 올해 경영참여형(의결권 10%취득 의무) 사모펀드 규제 완화 및 일원화 법안 처리 등도 예정돼 있다.
하나금융투자 오진원 연구원은 "증시 전반에 주주환원 확대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연초 이후 배당 서프라이즈 발표 기업의 주가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2019년 컨센서스에 의하면 순익 14% 감소에도 불구하고 배당은 6% 증가 기대감이 형성되어 있다"면서 "특히 국민연금이 단계적인 의결권 행사 확대를 계획하고 있어 앞으로도 주주환원 증대는 지속될 중장기 트렌드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진그룹은 한진칼의 배당성향(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배당금액)을 2017년 3.1%에서 50%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포스코는 8000억원으로 2017년 대비 25% 늘렸다. LG도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22.7% 감소했지만 배당금을 53.8% 늘렸다. 삼성전자는 배당성향을 2017년 14.1%에서 지난해 21.9%로 올렸다. 롯데그룹의 시가배당률이 전년에 비해 약 1.1%포인트 늘었고 현대자동차그룹은 0.83%포인트, SK그룹은 0.6%포인트 가량 배당률을 늘렸다.
시장에서는 첫단추인 한진칼과 현대자동차그룹의 향방에 주목한다. 주주행동주의 투자의 분수령이 될 뿐 아니라 투자 가치 측면에서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방전도 시작됐다. 엘리엇은 현대차에 회사가 제시한 배당보다 7배 이상을 요구했고, 현대차와 똑같이 3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 투자자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시각이 공존하고 있지만 이들은 성과가 저조하거나 근본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며 "행동주의 투자자들도 소수 지분 보유자로 다른 기관투자자를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연구원은 "KCGI의 입장에서도 단기 차익 회수 의심을 넘어서기 위한 중장기 추가 지분 매입을 생각해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창(KCGI)'과 '방패(한진)'의 양보 없는 싸움은 '넥스트(Next) 한진칼'에 주목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 등에 따르면 대형주로서는 네이버, 중형주로서는 현대그린푸드·현대백화점, 소형주로서는 한국단자·광동제약·조광피혁 등이 행동주의 펀드에 취약해 보인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대주주 지분이 40% 이하에 머물고 15% 이하의 배당성향을 띠고 있다. 아울러 다른 기업보다 보유현금, 자사주, 자기자본 내 이익잉여금 비중이 높은 특징을 보인다.
지분율이 낮은 기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지주사로 전환한 롯데지주의 신동빈 회장 지분율은 10.5%에 불과하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22.65%)을 포함한 대주주 지분율이 36.06%이나 소액주주 지분은 53.86%에 달한다. 글로벌 사모펀드 소버린의 공격을 받았던 SK는 최태원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88%에 그치며, LS(33.29%)와 현대중공업지주(33.31%) 등도 대주주 지분율이 30%대다.
한편에선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기관투자가의 주총을 바꾼다'란 보고서에서 "경영권과 관련한 제도들에 반기업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돼 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주주 행동주의가 확산될 경우 자본시장 건전화보다는 약탈적 주주자본주의의 확산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미들의 혜안도 요구된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튜어드십코드, 주주활동의 근본적 목적은 투자자와 기업의 대화를 통해 기업가치를 장기적으로 개선한다는 점"이라면서 "투자자는 기업의 성장을 응원하고 기업의 성과가 포트폴리오의 수익률로 이어져 기업, 투자자, 수익자 모두를 위한 윈윈게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