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새벽 미국 현지에서 숙환으로 별세한 가운데 서울 대한항공 서소문사옥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 손진영기자 son@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70세의 일기로 사망하면서 향후 한진가의 형제들에 새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현지에서 향년 70세의 나이에 숙환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의 임종은 배우자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가족이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1949년 3월 인천에서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하대를 졸업하고 1974년 미주지역본부 과장으로 한진그룹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2002년 부친이 타계한 후 2003년부터 한진그룹 회장직을 맡아왔지만 부친이 세운 그룹 전체를 맡지는 못했다. 조 회장이 그룹의 주도권을 잡는 과정에서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다.
한진가(家) '왕자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과정에서 한진그룹은 차남 조남호의 한진중공업, 3남 조수호의 한진해운, 4남 조정호의 메리츠금융으로 나뉘었다.
3남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세상을 떠난 뒤에는 제부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에서는 최 회장이 승리했지만, 한진해운이 급격하게 기울자 2013년 한진해운 경영권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17년 파산했다.
한진 일가의 시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조양호 회장은 사망 수일 전인 지난 달 27일 대한항공 주총에서 주주의 반대로 대표이사(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부결되면서 대한항공 이사의 지위를 상실했다. 조회장은 배임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였다.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남영빌딩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주주총회에서는 조남호 회장이 사내이사직 연임에 실패했다. 이날 주주총회에서 한진중공업 이사회는 조남호 회장을 사내이사로 추천하지 않았다. 경영 실패에 따른 결과였다. 조 회장은 2013년 한진중공업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왔지만, 올해까지 사내이사직을 유지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새벽 미국 현지에서 숙환으로 별세한 가운데 서울 대한항공 서소문사옥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 손진영기자 son@
KDB산업은행 등 국내외 채권단은 이달초 한진중공업에 대한 6874억원 규모의 출자 전환을 확정했다. 한진중공업의 최대주주는 기존 한진중공업홀딩스에서 산업은행으로 바뀌었다. 한진중공업홀딩스를 통해 경영권을 행사하던 조남호 회장은 경영권을 잃게 됐다.
조 회장이 이런 시련을 겪게 된 것은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 경영악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중공업은 약 2조원을 들여 필리핀 수비크만에 조선소를 짓고 중대형 상선을 주로 건조해왔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황이 이어지면서 경영이 악화됐다.
수비크조선소는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 1월 현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자회사 수비크 조선소의 손실이 반영되면서 모회사 한진중공업은 완전자본잠식(자본금을 모두 소진해 회사에 빚만 남은 상태)에 빠져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조양호 회장은 말년 가족들로 인한 문제로 연일 논란이 됐다. 조 회장은 아내 이명희를 슬하에는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을 자식으로 두고 있다. 최근 아내와 딸들의 갑질 논란으로 구설수에 함께 올랐다.
한편 재계에서는 조 회장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조 사장은 지난 2003년 한진정보통신으로 입사해 2004년 대한항공 경영기획팀 부 팀장 등을 거쳐 2016년 3월 대한항공 대표이사 총괄부사장으로 선임됐으며 2017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조 사장은 부친과 함께 회사 경영을 이끌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