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학부를 졸업했다. 20년 이상 다니던 공기업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창업후 10년간 매년 두배씩 성장하는 기쁨을 맛봤다. 회사가 커가면서 2500억~3000억원에 달했던 매출액도 어느덧 1조원을 바라보게 됐다. 국내시장만 바라보지 않고 전 세계를 뛰어다니며 거래처를 만들어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거두는 쾌거도 이뤘다. 기업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도 받았다.
그런데 어느해부터인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연간 300억원씩 펑크가 났다. 해외수출비중이 높아 환헤지를 위해 은행 권유로 가입한 키코(KIKO) 상품 때문이었다. 키코 손실액은 순식간에 불어나 3년새 1000억원에 달했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결국 잘 나가던 회사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3년3개월 가량 감옥도 갔다왔다.
"열심이 뛰어다닌 결과가 키코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 내가 부덕해서다. 회사가 어려워진 것도 결국 경영자인 '내 탓'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키코에 피해를 입어 나락으로 빠졌다 재기를 다진 한 기업인의 이야기다.
역시 키코로 회사가 큰 타격을 입었던 한 기업인은 "감옥이 멀리 있지 않더라"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주변의 수많은 키코 피해기업인들이 감옥을 오고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본인이 감옥문을 들락거리지 않은 것에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했다.
한 때 매출이 2조원에 달하며 국내 LCD업계를 호령했던 한 기업도 키코에 직격탄을 맞고 문을 닫았다. 이 회사 오너도 현재 감옥에 있다. 인터넷에서 이 회사의 홈페이지를 찾아 클릭했더니 카지노 관련 사이트가 뜬다.
키코 피해기업들이 은행과 금융감독당국, 그리고 법원에 맞서 싸워온 지도 어느덧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간다.
점점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 싶은데 앞으로 지난한 싸움을 또 얼마나 더 해야할지는 알 수 없다. '키코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문재인 정부에 그나마 마지막 남은 희망을 걸 뿐이다.
"우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습니다. 바닥입니다." 이들 기업에게 이젠 올라갈 일만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