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은 19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광화문광장 조성사업 시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거센 반대여론에 부딪히면서 사실상 백지화됐다. 서울시는 새로운 광화문광장과 관련해 '더 많은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강조할 뿐 사업을 무산시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첫 삽은 반드시 뜨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서울시가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와 같은 공정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광화문광장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토건사업으로 재정 낭비한 이명박 정부와 다를 게 없다며 '이명박원순'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9일 서울시청에서 긴급브리핑을 열고 "새로운 광화문광장, 시민의 목소리를 더 치열하게 담아 완성하겠다"며 "새로운 광화문광장이란 중차대한 과제를 위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세종대로 앞 왕복 10차로 도로를 6차로로 축소시켜 광장 면적을 현재의 3.7배로 넓히고 경복궁 전면에 월대(궁중 의식에 쓰이던 단)를 복원, 역사광장과 시민광장을 새롭게 만드는 사업이다. 총 104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이날 박 시장은 "시는 지난 3년간 100여회에 걸쳐 시민 논의를 축적했다. 단일 프로젝트로는 유례없는 긴 소통의 시간이었음에도 여전히 다양한 문제 제기가 있다"며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토론하겠다. 사업 시기에도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민과 소통하겠다던 박 시장은 다음 일정이 있다며 질문 3개만 받고 급하게 브리핑룸을 빠져나갔다. 진희선 행정2부시장이 박 시장을 대신해 기자들의 질의응답을 받았다.
'시민 여론조사에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대해 90%가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와도 추진할 것이냐'고 묻는 말에 진희선 부시장은 "어떠한 식으로든지 '광화문광장은 문제가 있다', '새로운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시민 공감을 토대로 더 좋은 논의안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사업 중단'이 아닌 '사업 재검토'임을 강조했다.
진 부시장은 "광화문광장 '원점 재검토', '전면 중단'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며 "사업 자체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진 부시장은 "분명한 것은 현재 광화문광장의 문제에 대해서는 시민 모두가 인식하고 있고 어떠한 식으로든지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다 공감하고 있다"며 "다만 좋은 안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는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거다"고 말했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11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7월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는 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실익보다 부작용이 크고 미래 가치를 담지 못한 토건사업으로 중단돼야 한다"며 "광장은 정해진 일정에 만들어지는 공산품이 아니며 소통과 합의 역시 박원순 시장의 개인 스케줄에 맞춰 하는 행사가 아니다"고 일갈했다.
이 같은 비판 여론에도 서울시가 사업 추진을 강행하자 시민사회 반발도 커졌다. 지난달 29일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서울시민연대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졸속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는 "사회적 합의가 불충분한데도 서울시가 월대 복원을 위한 공사를 강행한다면 시민 불복종을 선언하고 해당 공사를 막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며 "공사는 공사대로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진짜 소통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당초 시는 2021년 5월까지 광화문광장 재조성을 완료할 예정이었으나 행정안전부가 지난 7월 '시민과 소통이 더 필요하다'며 광장 재구조화 일정 조정을 요청하면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게 됐다.
박 시장이 이날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에 대해 시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힘에 따라 착공 시기는 여론에 민감한 총선이 치러지는 내년 4월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는 시민과 관계부처 의견을 재수렴한 뒤 광장 설계안을 최종 확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구단위 도시계획변경 등 관련 행정절차도 보류된다.
박 시장은 "서울시정은 다양한 논의를 거치고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 최선의 결론에 이르게 한 경험이 축적돼 있다"며 "광장의 주인인 시민과 함께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오랜 꿈을 완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