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헬로 노동조합이 2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공정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LG유플러스와 기업결합의 조속한 승인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20년 간 케이블TV 업체가 유료방송 시장을 이끌어왔는데 인수·합병(M&A)도 못하게 하고 정책 대안도 없이 소멸시키려는 것이냐".
공정거래위원회의 유료방송 시장의 M&A 심사가 늦어지면서 케이블TV 업계와 이동통신 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공정위에 이어 방송통신위원회까지 절차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남은 M&A 심사 과정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기약 없는 M&A 심사로 인해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케이블TV 업계의 직원들은 향후 대정부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 유료방송 시장 재편 대응한다면서 '늦장 심사'…"고용 안정 논의도 지체"
24일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6일 전체회의를 열고 LG유플러스의 CJ헬로 기업결합 심사 안건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합의를 유보했다. 이에 CJ헬로 노동조합은 지난 23일 공동성명을 내고 CJ헬로와 LG유플러스 기업결합에 대한 조속한 승인을 촉구했다.
공정위는 지난 2016년에도 SK텔레콤과 CJ헬로(당시 CJ헬로비전) 인수합병과 관련, 이미 한차례 불허 결정을 내린 바 있다. SK텔레콤이 CJ헬로를 인수할 경우 78개로 나눠진 방송 권역 중 21개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돼 독과점 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공정위는 이동통신 시장에서도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하면 시장점유율이 47.7%로 올라가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한다는 점도 불허 이유도 들었다.
그러나 2016년과 달리 시장 획정 기준으로 삼았던 지역단위가 전국 단위로 달라졌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OTT) 업체들이 국내 시장에 침투하고, 케이블TV 위주에서 인터넷TV(IPTV)로 유료방송 시장은 재편되고 있다.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도 "3년 전과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M&A 이후 신사업 등 산업 재편 방안을 논의해야 할 업계 분위기는 침울하다. CJ헬로 노조 관계자는 "2016년도 공정위에서 불허 결정을 내릴 당시에도 회사 투자가 중지되고 영업도 공격적으로 할 수 없고, 내부 직원 이탈도 많았다"며 "당시 불허 결정을 내릴 때도 217일 간의 심사 시간을 소요하고, 3년이 지난 지금도 7개월 간 심사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통신사와 케이블TV 모두 허가 사업자라 시장 자체가 뻔한데 미적미적할 이유가 있나"라며 "직장이고 삶의 터전인데 고용 안정 등에 대한 논의 자체도 진척이 안 되고 있다. 직원들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 "규제 샌드박스로 진행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통사도 난항
이동통신사도 상황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늦어지는 M&A에 당초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수도 나왔다. 방통위가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에도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의견을 담아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사무처가 준비해 달라"고 주문했다.
SK브로드밴드의 티브로드 합병은 현행법상 방통위의 사전동의 절차가 필요하지만, LG유플러스와 CJ헬로는 주식교환 형태이기 때문에 방통위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지난 2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한 위원장은 "두 건 다 사전동의 절차를 가는 것이 맞다"고 개입 의사를 드러냈다. 의견 제시에는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어렵게 공정위의 문턱을 넘는다고 해도 과기정통부와 방통위의 허들도 넘어야 한다. 올해 안에 M&A 마무리 이후 사업 재편을 가속화하려던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정책 결정에 따라 모든 것이 무산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할 수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사업자 진출 등 유료방송 시장 재편이 불가피하다. '규제 샌드박스'로 해서 신속하게 처리해도 부족할 판인데 되레 제동을 건다"며 "공정위 심사도 늦어지고 방통위 또한 의견을 받는 등 절차를 거치면 시간만 더 소요될 뿐인데 사업자들의 속만 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