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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62>와인의 역사를 바꾼 필록세라

<62>필록세라

 

안상미 기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포도나무도 유럽 전역의 포도밭을 초토화시킨 해충에 시달린 적이 있다. 와인은 물론 주류 전체의 역사를 바꿔버린 필록세라다.

 

필록세라는 진드기의 일종이다. 원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발견되던 해충이다. 뿌리에 기생해 수액을 빨아먹으면서 포도나무의 가지와 잎까지 말라비틀어 죽여버린다. 수백 개의 알을 낳는 엄청난 번식력으로 한 번 생겼다 하면 포도밭 전체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포도뿌리에서 시작에 결국에는 나무 전체를 죽이지만 미국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랜기간 필록세라와 싸워오면서 포도나무 자체적으로 이미 면역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미국 포도나무 묘목이 영국으로 수입되는 과정에서 뿌리에 기생하던 필록세라도 같이 유럽으로 건너왔다. 필록세라에 대한 내성없이 무방비 상태였던 유럽의 포도나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필록세라는 1863년 영국을 시작으로 1869년 프랑스 보르도, 1875년 이탈리아, 1878년 스페인에서 창궐했다. 신이 내린 저주라고 표현할 정도로 당시 유럽 포도밭의 3분의 1이 황폐화됐다.

 

/와인폴리

해결책이 나온 것은 필록세라 피해가 생긴 지 무려 20여 년이나 지난 뒤였다. 필록세라에 저항력이 있는 미국 종 포도 뿌리에 유럽 종의 포도 가지를 접붙이는 방식이었다.

 

20여년에 걸친 필록세라 재앙은 많은 것을 바꿔놨다.

 

먼저 와인 이외 다른 주류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유럽의 와인 생산량이 뚝 떨어지면서 이전에는 하층민이나 먹던 맥주를 상류층도 마시기 시작했다. 와인을 증류시켜 만드는 코냑도 구하기 힘들어지자 스코틀랜드 산 위스키가 대용으로 떠올랐다.

 

와인시장의 구도도 달라졌다.

 

필록세라 피해가 한 두해로 끝나지 않고 10년, 20년에 달하자 와인메이커들이 유럽시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포도나무가 아직 건재한 호주나 아르헨티나, 칠레, 남아프리카 등으로 이동하면서 신세계의 와인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칠레는 필록세라로부터 안전한 몇 안되는 나라다. 칠레가 프랑스로부터 포도나무를 들여온 것은 필록세라가 창궐하기 전인 1860년대 초로 지금도 접붙이기를 하지 않은 순수 품종을 유지 중이다.

 

내부적으로는 프랑스가 와인의 생산과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계기가 됐다. 필록세라로 포도밭이 죄다 망가지지면서 와인 품귀 현상이 극심해지자 가짜 와인이 판을 치게 된 탓이다.

 

건포도로 가짜 와인을 만드는 것은 물론 원산지 개념은 무시되고, 다른 나라에서 만든 와인을 프랑스 와인에 섞어팔기도 했다. 심지어 양을 늘리기 위해 와인에 물을 타거나 포도가 아닌 다른 과일즙을 속여 팔기도 했다. 가짜 와인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프랑스는 이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와인법을 만들어 시행하게 된다. 지금도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 범 국가적 시스템 AOC(원산지 호칭 통제)다. 산지 명칭을 쓸 수 있는 경계선을 명확히 했고, 포도품종부터 재배법, 양조까지 세부적인 기준도 국가가 정했다. 필록세라로 인한 고통도 컸지만 결과적으로는 와인의 품질을 한 단계 올리는 계기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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