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천당이나 극락 가기를 염원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부처님 사촌동생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든 부자 되기 싫다는 사람도 그리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부자도 되고 천당이나 극락세계에 가고 싶어 하는데, 부자가 천당에 가는 길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불가능하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였다.
생각건대, 같은 부자라 하더라도 그 옛날 농경사회 같은 단순재생산사회의 부자와 오늘날 확대재생산사회의 부자들은 그 뿌리부터 다르다. 이제는 부자들도 천당이나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논리를 들여다보자. 오늘날에는 부자가 되어야 할까? 천당에 가야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가복음, 10장 25)는 성경구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탐욕의 뒤 끝이 좋지 않다는 교훈을 준다고 판단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기도 했던 이 가르침은 물질적 부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 마음속 한 귀퉁이에 한 가닥 위안으로 작용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단순재생산 시대에서는 가뭄과 홍수가 들지 않는 한, 해마다 생산량이 거의 변함이 없었다. 남달리 큰 부를 축적하는 것은, 봉건사회가 아닌 '자본주의 윤리' 잣대로 본다면,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수치였다. 연간 산출량이 일정한 농경사회에서 근검절약을 통하여 작은 부자가 될지는 몰라도, 큰 부자가 되려면 최소한 자기 몫을 더 크게 나누거나 남의 것을 가로채지 않으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나눌 것이 일정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더 많이 가지면 다른 누군가가 덜 가져야 하는 것은 빤한 이치다. 단순재생산 사회에서 제 배만 채우려는 탐관오리들이 나라를 흔들리게 하다 망하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오늘날 확대재생산 시대에는 기술혁신을 통하여 부가가치 창출에 크게 기여할수록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으므로 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 크게 기여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신도 부자가 되는 일석삼조의 좋은 일을 하는 셈이다. 정당하게 부를 일군 부자가 많아지면 새로운 생산 활동을 위한 자본이 축적되고 이를 통하여 경제의 성장과 발전이 이루어지므로 그 자체가 공동선(共同善)이며 사회정의다.
봉건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귀족이란 적의 침입으로부터 평민, 농노들을 보호하려 자신의 목숨을 건 기사들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구태여 귀족을 꼽으라면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그 가족들을 먹여 살리면서, 자신도 정당하게 부를 축적하는 기업가들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보다 더 고귀한 무엇이 어디 있겠는가?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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