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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관람객 주눅 들게 하는 미술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또 하나의 전시 형식으로 온라인미술관이 부상하고 있다. 장소의 특수성을 해소하고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뿐더러, 굳이 먼 길을 가지 않아도 되니 몸도 편하다.

 

그러나 온라인미술관은 형태와 색은 진짜 같으나 맛도 향도 포만감도 느낄 수 없는 인조음식을 연상시킨다. 아무리 화려한 기술로 무장한들 화면 속에선 실제 작품이 놓인 공간의 분위기를 체감하긴 어렵다. 많은 이들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우피치미술관이나, 모마, 프라도, 구겐하임을 찾는 이유는 예술이, 그것으로부터의 감동이 단지 듣고 보는 것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코로나 확산세가 주춤하면서 미술관 방문 역시 수월해졌다. 예약제라는 번거로움이 있는데다, 언제 또 휴관에 들어설지는 알 수 없는 현실에서 당연하게 누렸던 것을 잃었을 때를 생각하면 약간의 불편함 따윈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미술관에 접근하는 과정이 과거 대비 훨씬 복잡해졌음에도 시민들도 잘 협조해주고 있다.

 

하지만 현장 서비스 마인드는 코로나 전후 그리 달라진 게 없다. 전시 예절을 잘 몰라 실수라도 하면 이해시키려는 노력보단 너무 쉽게 제지에 나서 주눅 들게 만들고, 일부 관계자들은 안내자의 역할에 앞서 감시자인 양 처신한다. 그들의 지시하는 듯한 언행은 때로 불쾌감까지 심어준다.

 

필자에게도 위와 같은 경험이 있다. 최근에도 그랬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유도를 '관람객 관리'로 착각하는 예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지난해 12월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광장' 전 2부를 보기 위해 과천관을 찾았을 때이다.

 

'광장' 전 2부는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으로 준비된 만큼 의미가 컸다. 예술가 220여명의 작품 300여점이 내걸린 방대한 규모에 좀처럼 접하기 힘든 작품들도 다수 선보였다. 난 이리저리 둘러보며 몇몇 작품을 사진에 담았다. 그런데 자꾸만 머리 뒤가 따끔거렸다.

 

원인은 지속적으로 나를 좆던 한 스태프의 눈길이었다.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허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게 다가와 동영상을 찍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으나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감상에 지장을 준 것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사진은 찍어도 동영상은 안 된다"는 말을 덧대며 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졸지에 난 아무 잘못도 없이 잠재적 규칙위반자로 낙인되고 말았다.

 

그 보다 앞서 열린 곽인식 전에서도 한 직원이 나와 동행한 학생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사사건건 참견하고 눈을 떼지 않아 관람을 포기해야 했다. 어떤 선입견을 지닌 그 관찰자의 시선이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특히 단체 관람 중에는 예약 없이 작품해설을 할 수 없다며 '관람예절 준수 서약서'를 들이밀던 기관에서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도슨트 프로그램과 일정이 맞지 않아 자율적으로 조용히 행하는 해설이 왜 문제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납득되지 않지만, 아마 그런 규정을 만든 건 타인의 관람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기인했을 것이다. 혹시 모를 작품 파손을 방지하고 관람객 안전을 비롯한 쾌적한 관람 환경 구축 차원에서 보면 수긍 가능한 측면도 없진 않다.

 

그렇더라도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목도한 한 스태프처럼 주구장창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것도 문제이나 관리감독의 태도가 아니더라도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전시 관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감시자라는 인상을 심어준다면 개선해야 마땅하다.

 

사실 외국 어디를 가도 현장 관계자들은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위치에 자리하고 그렇게 교육을 받는다. 단체 관람객에게 자체 설명을 제약하는 전시공간도 좀처럼 볼 수 없다. 우리나라처럼 쓸데없이 엄숙하지도 않으며, 관여할 수밖에 없는 어떤 사안이 예상되면 겸손히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외국 사례는 이미 관료적 사고가 몸에 밴 이들에겐 너무 먼 얘기인지도 모른다.

 

관람객은 공간에 놓인 작품만을 이미지로 읽지 않는다.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 역시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들이 왕왕 내보이는 불친절과 불필요한 권위의식, 통제자와 같은 태도 등은 그러잖아도 낯설고 거리감 있는 미술관을 더욱 데면데면하게 만든다. 물론 그러한 경험이 쌓일수록 미술에 대한 관심도도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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