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의 캐릭터와 온갖 꽃과 동·식물, 인물, 풍경 등이 알록달록 새겨진 벽화. 서울은 물론 부산, 대전 등 거의 모든 지자체마다 벽화가 있다. 전국에 벽화마을만 100개가 넘는다. 거의 난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엔 정부까지 가세했다. 지난달 3일 문체부는 지역주민 공동사용 시설과 낙후된 지역의 공공기관에 벽화와 조각 작품을 설치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른바 '예술 뉴딜'로 전국 지자체별로 1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실시하되 정부가 사업비 80%를 보조하는 방식이다. 전체 예산은 759억원이다.
8500여명의 미술인에게 일자리와 창작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취지 면에선 그리 나쁘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예술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방문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겐 가까운 곳에서 예술작품을 접할 수 있기에 긍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사회적 역할을 노동 가치로 환원한다는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미술계 반응은 싸늘하다. 눈앞의 고통만을 잠재우기 위한 한시적·단편적 용역사업에 불과한데다 공공 공간에 들어서는 벽화의 특성상 내용 제약, 사후 관리, 주민 갈등 등 여러 문제들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정부의 예술 뉴딜과 닮은 1930년대 미국 연방예술프로젝트의 경우 예술인들에게 5000여 개의 일거리를 주었고, 불과 8년 동안(1935∼1943) 벽화를 포함한 약 20만점의 작품을 설치하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정부는 정치적이거나 어두운 그림은 그리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작가적 신념이 드러나는 작품도 불허했다.
결국 예술 뉴딜에 참여한 작가들은 얼마 못 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이탈했다. 뉴딜 벽화는 양적 결과 대비 질적인 부분에선 한계가 분명했으며, 일부를 제외하곤 미술사적 의미도 얻지 못한 채 거의 사라졌다.
내용의 제약은 계몽적이거나 낮은 수준의 그림과 관계있다. 예술성과 시민 눈높이가 상치될 경우 곧잘 민원도 발생한다. 민원이 들어오면 애초 목적과 상관없이 철거까지 감행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주소다. 세계적인 거장 데니스 오펜하임의 유작 '꽃의 내부'를 무단 철거한 뒤 고물상에 팔아넘긴 부산 해운대구의 2017년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자체에는 설치작품을 적절히 관리 감독하거나 주민 이해를 구할 상시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인력과 예산 불충분은 결국 사후관리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해당 주민들의 삶과 정서와 동떨어진 벽화사업은 사회적 자산으로 남기 어렵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관광지화된다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사생활 침해와 주민 갈등, 공동체 붕괴라는 또 다른 문제와 봉착한다. 그리고 우린 이미 이화동 벽화마을의 명소였던 계단그림이 주민들에 의해 지워진 2016년과, 방문하는 사람들의 행렬에 따른 주민 피해를 보다 못해 예술인 스스로 벽화를 없애버린 2010년의 예를 기억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걱정에 단순히 벽화만이 아닌 문화적 공간 조성, 주민 협업 프로그램 등을 통해 차별화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주민들과 적극 소통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러나 미술전문가가 총괄 진두지휘하는 구조가 아닌 한 독립된 관리 기구 없이 진행되는 추상적 구호에 그칠 확률이 높다.
창작자들은 각종 잡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벽화사업이 아닌 예술인 직업 안정, 창작환경 개선과 같은 미래지향적 지원을 원한다. 바로 유통망 개선을 비롯한 신진작가 발굴 지원, 창작 지원, 작업실 전·월세 지원, 수장고 확충 지원, 예술인 자녀 장학금 지원 등이다. 담벼락에 달라붙어 뙤약볕에서 땀 뻘뻘 흘리며 해바라기나 물고기 따위를 그리는 일회성 공공미술 사업에 비하면 훨씬 가치 있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한 정부 정책과 예술인의 바람 간 괴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듯싶다. 정부는 세금을 사용하는 만큼 가시적인 결과로서의 일자리 창출을 말하는 반면 작가들은 이미 예술가라는 '직업'과 창작 활동이라는 원래의 '일'이 있는데, 왜 자꾸만 다른 일자리를 맡으라고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온도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거리감이 정부의 '예술 뉴딜' 효과에 의구심을 덧대는 근본적인 이유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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