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형마트에서 비싸게 산 사과가 썩은 사과였다면, 먹어보지 않고 산 고객책임일까?"
"새 자동차를 샀는데 고장이 났다면 자동차회사 책임일까? 대리점 책임일까?"
저렴한 가격의 사과라면 대형마트가 먼저 배상하고, 물건을 공급하는 쪽에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자동차에 문제가 생겼다면 당연히 자동차 회사에 책임을 묻는다. 그러면 최소 가입금액이 1억원이 넘는 사모펀드에 부실이 생기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자산운용사의 운용부실이 원인이고, 자기 판단으로 결정한 사모투자인데 돈은 판매사가 물어주라고 한다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열린 국회 정무위에서 "사모펀드 사태는 일부 사모운용사의 불법행위, 자율적 시장감시 기능의 미작동 등이 주요 원인"이라며 "관련 감독·검사를 담당하는 금감원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사모펀드 사태는 왜 갑자기 터졌을까? 그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까? 없었다. 원인은 금융당국의 지나친 사모펀드 규제 완화다. 그리고 판매사의 자율적 감시기능을 빼앗은 무리한 규제 때문이다.
모든 정책은 '트레이드 오프(Trade off·어느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경제 관계)'가 나타난다.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부정적인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땐 다양한 시나리오를 점검해야 한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핵심은 골키퍼는 부족한데 축구장의 골대만 넓혀 준 규제완화와 지나친 판매사 견제정책 때문이다.
먼저 사모펀드 규제완화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5년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을 쉽게 할 수 있게 자본금과 전문인력 요건을 낮춘 등록제를 시행했다. 전문운용사 설립에 다른 채용인력 증가와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를 넓힐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관리 감독 체계를 충분히 갖추지 않은 채 사모운용사에 대한 등록제를 시행했다. 사모운용사가 270여개로 급격히 늘어나 감독의 사각지대가 생겼다.
다음으로 잘못된 판매사 견제정책 시행이다. 지난 2016년 미래에셋증권(현 미래에셋대우)이 베트남 하노이 랜드마크72빌딩에 대한 선순위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시리즈로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한 일이 있다. 처음엔 창의적인 자금조달로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공모 회피를 위한 편법으로 판단한 금융당국의 갑작스런 조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규제가 이어졌다.
공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자산운용사를 감독할 조직 확대 대신 오히려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펀드 금지, 시리즈 금지제도를 내놨다.
포트폴리오인 신탁자산 내역을 판매사가 요구해도 운용사는 공개의무가 없었다. 판매사 입장에선 투자자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지만 접근 불가였다. 감독당국의 역량도 부족한 상황에서 은행·증권사 등 판매사의 자율감시 기능을 뺏고, 사모운용사를 과신했다.
지난달 28일 금융당국은 운용사에 대한 판매사의 감시·견제 기능을 강화한 '사모펀드의 건전한 운용을 위한 행정지도안'을 내놨다. 그간의 정책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사모펀드 사태는 운용사의 부실 문제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모든 판매회사를 감사하고, 심지어 판매회사의 내부통제 문제로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정책시행 착오와 감독의 실패 책임은 뒷전으로 미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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