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만들어야 정보통신 발전 역사에 대한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는 토양이 생깁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없어지면 더 이상 주장할 사람도 없어요. 끈질기게 끈을 놓지 않고 하려고 합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서 만난 김부중(81) 한국정보통신역사학회장(한국통신 기획조정실장, KT파워텔 사장 등 역임)은 결의에 찬 눈으로 이 같이 말했다.
김부중 회장은 과거 체신부 시절부터 한국통신 시절까지 정보통신 기획 분야에 35년 넘게 종사한 정보통신 근대화의 산증인이다. 1985년 통신 100주년을 맞아 한국전기통신 100년사를 1년 간 편찬하기도 했다. KT 홍보실장을 역임하던 시절에는 서울 광화문 전기통신 발전 기념탑 건립 추진에 힘쓰기도 했다.
그는 정보통신 실무 경험자들과 관련 교수들이 20여명 가량 모인 비영리사단법인인 정보통신역사학회를 통해 전기통신 발전 기념탑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2016년부터 공중전화, 삐삐, 초창기 휴대폰까지 매년 공모전을 열고 알리기에 나섰다. 올해 주제는 과거 문자 송수신 필수품이었던 텔렉스(Telex)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공모전이다.
그는 "전국 초·중등학교 교과 과정에 전보·전화 등 정보통신 관련 내용이 교과 과정에 있는 만큼 이런 정보통신에 관한 이미지를 살리는 공모전을 여는 등 관심을 가지면 좋은데 학회 차원에서 간소하게만 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부중 회장과의 일문일답.
-우리나라는 통신 인프라 보급 및 접근성에서 손꼽히는 ICT 강국이라고 불리고 있다.135년의 정보통신 역사가 있는데, 아직까지 일반인들이 쉽게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정보통신 박물관이 전무한 실정이다.
▲전기통신 100주년을 맞을 때 전국적으로 사료를 수집하고 동대문 흥인시장이나 일제시대부터 근무했던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통신 제품 등의 기기를 수집한 것이 7500점 정도 된다. 우리나라를 ICT 강국으로 만든 국산 기업들의 발자취가 녹은 1962년부터 1차부터 5차까지 통신개발 5개년 계획 기간 중의 사료라 IT 강국의 살아있는 증인인 셈이다. 이를 가지고 1993년에는 용산전화국에 정보통신박물관을, 1996년에는 남대전에 충남정보통신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런데 당시 홍수 때문에 용산전화국은 실내까지 물에 차서 부수고 빌딩을 짓는 과정에서 폐관됐고, 남대전 전화국도 새로 건물을 짓고 임대를 주느라 박물관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후로도 박물관을 만들려고 노력은 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내던져졌다.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 된다.
▲상당히 안타깝다. KT 등 정보통신 기업에서도 사료관리부가 폐지되고 정부에서도 매년 연차보고서를 작성하는 정도다. 역사와 사료발굴, 보존조사연구는 연구·개발(R&D)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역사 편찬이나 사료, 역사적가치 물품 등 발굴, 보존, 전시 등 조사연구 분야는 행정업무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사회간접자본(SOC) 중 건설교통의 경우 국립등대박물관, 국립철도박물관, 교통박물관, 항공박물관 등이 마련돼 있고 산업자원 또한 전기박물관과 석탄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이 있다. 정보통신 역시 대표적인 사회간접자본(SOC)이고, 관련 사료나 유물도 많은데 유독 박물관이 없다.
-우리가 정보통신 역사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국에 박물관이 825개나 되고 학예사 등 종사자도 1만7978명에 달한다. 연구원은 1595명이다. 박물관이 언뜻 보기에 그냥 옛날 유물을 전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박물관은 전문전담 인력풀이다. 박물관을 매개로 정보통신 역사를 평생 연구하는 인력풀이 있어야 한다. 정부행정이나 기업 업무의 아웃소싱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과거 스웨덴 통신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를 회상했다. 그 때 박물관 내부에 있는 식당에 갔는데 한 할아버지가 손주를 데리고 자랑스레 정보통신 역사에 대해 자랑하고 설명하던 모습이 보기 좋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스웨덴 통신박물관은 별도 투자 없이 유휴건물을 활용해 세워졌다. 시설은 소박하지만 유물 중심으로 정리가 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먼 유럽뿐 아니라 가깝게는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도 정보통신박물관이 전문화 돼 있고 학술단체에 준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박물관을 기반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자연스레 정보통신 관련 역사를 알리고, 거대한 전문 인력풀도 조성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정보통신 박물관 개관하려면 예산이 많이 든다는 지적도 있다.
▲정보통신은 자동화, 전자화가 가속화되면서 소형화·집중화돼 유휴청사나 건물이 많다. 박물관이 으리으리할 필요는 없으니 이 같은 유휴건물들을 활용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박물관에 전시할 유물이나 사료에 반드시 어디에 사용됐고, 어디에 썼는지 설명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름이나 제조시기 등의 기록으로는 설명서가 없으면 유물의 가치가 없다. 이는 대학교수도 모른다. 옛날 전화국에서 수리하던 사람들, 통신 기기를 테스트한 사람, 중계기를 운영했던 사람 등 종사자들이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의 나이가 70~80대 고령에 접어들어 안타깝다. 더 늦기 전에 과거 정보통신 실무경험자들을 대상으로 설명서를 기록해야 한다.
김 회장은 1987년 이뤄진 전국광역 자동화와 한국전기통신공사의 발족·민영화로 인한 경쟁체제 도입을 정보통신 발전의 가장 큰 전환기라고 바라봤다. 또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국 초고속 통신망으로 일반 국민들의 인터넷 속도가 상향되면서 전세계에서 인터넷 보급과 속도 1위 국가가 됐다고 되짚었다. 그는 젊은 후배들이 이 시절 선배들이 만들고 수집한 유물이나 사료에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달했다.
-정보통신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 경험했듯이 인간과 사물의 융화다. 우리는 현재 온라인 수업이나 화상회의, 재택근무 등으로 이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정보통신의 가치는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 사슬이라는 것이다. 정보통신은 한계를 규정할 수 없다. 챗봇, 인공지능(AI) 결합 등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가치사슬이었다.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이 정보통신의 가치다.
-향후 학회 계획이 궁금하다.
▲우선 광화문에 있는 전기통신발상지기념탑을 지금 있는 위치에 그대로 있게 하려고 한다. 역사성이 없는 기념탑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전기통신발상지기념탑이 위치한 종로구 세종로공원은 한성전보총국 등 통신 관련 시설들이 들어섰던 역사적 자리다. 그리고 현재 있는 사료의 가치 인식을 공유하고 사료설명서를 만들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 이 일을 할 사람들이 70~80대라 시간이 얼마 없다. 그리고 유휴청사를 이용한 박물관이 개관할 수 있도록 열심히 주장하려고 한다. 젊은 후대들을 대상으로 정보통신역사 발전 과정에 대한 전문가 육성을 할 수 있도록 학회가 그 토양을 만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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