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스스로 미적 범주로 들어서 인간 삶과 의미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미술이다. 새로운 소통 방식과 미술의 영역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공공미술이다. 예술가는 계획하고 대중은 참여를 통해 작품의 일부 혹은 전부가 된다.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어떤 사람, 그리고 또 다른 사람(The one and the other)'(2009) 등의 작업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공미술을 '환경미화' 혹은 '시설물 개선'으로 이해한다. 그동안 누차 말했듯 공공주체의 미적 실천 따윈 안중에도 없이 그저 형편없는 수준의 조형물을 여기저기 세우거나 촌스러운 캐릭터와 조잡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벽화 따위를 그리는 게 공공미술인 줄 안다.
미술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인테리어 업자처럼 공간을 장식하는 것을 공공미술로 착각한다. 심지어 관광 인프라 조성 등을 명목으로 각 시군 및 구청에서 해야 할 일을 대신 하겠다며 나설 때에도 공공미술을 앞세운다. 공공미술에 관한 얇은 지식이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론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
오래 전 미국 출신의 미술비평가인 라울 자무디오(Raul Zamudio)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공공미술은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화려하다."며 "우리 시대의 이슈에서 어떤 광범위한 약속과 참여보다 우선되고 마을과 어떤 공동체, 주민의 환경으로 섞이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주목받는 공공미술은 시각적 기록을 넘어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을 담는다. 라울 자무디오가 후순위로 지목한 시대를 다루고 폭넓은 참여와 가치 있는 약속을 이끌어낸다. 최근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미국 건축가인 로널드 라엘(Ronald Rael) UC 버클리대 교수는 지난 2019년 미국과 멕시코를 가로막고 있는 국경에 핑크색 시소를 설치했다. 국경을 가로지르는 담벼락 홈에 3개의 기다란 막대를 연결한 이 작품에 대해 그는 "시소를 통해 우리는 모두 똑같고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경계를 허물고 단절을 연결로, 불평등을 평등으로, 갈등을 화합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쇠막대기 하나가 지닌 소통의 힘은 크다. 동시대 화두를 발굴하며 장소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미술의 언어로 세계인과 매개함으로서 공공미술이 곧 메시지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공공미술은 메시지를 확인하기까지 때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독일의 카셀 프라데리히아눔 미술관 앞에서 첫 삽을 뜬 요셉보이스(Joseph Beuys)의 7천 그루의 떡갈나무 심기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그 예다.
사회와 연결된 실천적 예술인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1982년 작가가 심은 떡갈나무 한 그루로 시작됐다. 이후 약 5년간 이어진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완성되었고 딱딱한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가 울창한 숲이 되기까지 3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인내가 요구되었으나 한 예술가의 상상력에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더해져 도시 풍경을 바꿨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이제 우리 공공미술도 변해야 한다. 당장 드러나는 가시적인 성과에 연연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공동체에 주목하고 '공공성의 실현'에 목적을 두는 방향에서 재설정되어야 한다. 그에 앞서 공공미술은 예술과 사회의 새로운 관계 맺기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 홍경한(미술평론가·DMZ문화예술삼매경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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