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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세상을 향한 절망 속 외침

우리나라에서 중남미 작가의 작품전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어지간한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에 초대받는 작가들은 미국이나 유럽 출신 일색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사비나미술관이 주관하는 특별기획전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은 주목할 만하다.

 

에콰도르를 대표하는 작가인 과야사민(1919-1999)의 작품은 현실미학을 기초로 한다. 따라서 다수의 작품에 가난하고 소외받는 국민의 고통과 절규가 배어 있다. 일례로 그의 1942년 초기작인 <파업>은 정치적 실패로 인한 끝없는 빈곤에 좌절하는 서민들의 절망이 서려 있다. <채찍질>(1948)을 비롯한 <절규>(1983) 연작에선 헐벗고 굶주림에 지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한 인물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작품 <피의 눈물>(1973)은 칠레 쿠데타가 발생한 1973년을 배경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 관련 슬픔을 다루고 있다. 겁에 질린 얼굴이 크게 그려진 <네이팜 머리>(1976)는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된 악명 높은 살상무기인 네이팜에 노출된 인물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과야사민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수난의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을 따뜻하게 보듬으면서도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에 대해선 강하게 저항하는 태도를 취한다.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의해 민중이 겪은 불행을 관 속에 갇힌 검은 상복차림의 여인들로 묘사한 <눈물 흘리는 여인들>(1963~1965)이나, 소수 정치인들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국민의 운명이 결정되는 현실을 담은 <펜타곤에서의 회의>(1970) 등이 그렇다.

 

이처럼 과야사민의 작품들은 1~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그리고 중남미에서 발생한 쿠데타와 혁명으로 점철된 20세기의 '광기'로부터 현세를 되새기는 방법으로서의 예술을 보여준다. 힘없이 무너지는 정치적·경제적 약자들을 연민과 희망의 눈으로 새겨놓고 있다. 그리고 특별기획전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에서 우린 작가 특유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전시를 통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류사의 절망인 폭력과 부조리, 정의롭지 못함, 평화가 실종된 상황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데 있다.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선 정치·경제·종교 등을 이유로 한 전쟁과 학살로 평화가 실종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죽거나 죽이고, 뺏고 빼앗긴다. 그로 인한 괴로움과 고통 또한 동일하다.

 

그의 작품들을 본 이들은 인간의 역사가 피로 얼룩진 투쟁의 역사이자, 폭력으로 인간을 착취해온 슬픈 장면들의 연속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한 한 예술가의 오랜 시도가 지금도 유효함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현재도 멈추지 않고 있는 인간이 인간을 향한 비극을 성찰하고, 시대와 관계없이 평화를 얻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던 무명의 희생자들을 위한 위로가 그의 그림 곳곳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야사민은 1999년 3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에콰도르 국민에게 큰 손실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 인간이 겪어야 했던 폭력에 대한 고발자로서 과야사민의 가치는 시들지 않았다. 일생을 가난한 국민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였던 과야사민의 삶과 철학은 현재도 그의 그림 곳곳에 살아있다. 전시는 2021년 1월 22일까지.

 

■ 홍경한(미술평론가·DMZ문화예술삼매경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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