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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대놓고 베껴도 모르는 사람들

미술도 마찬가지지만 창의성을 담보로 하는 예술 장르에서 다른 사람의 작품을 훔친다고 하면 그것은 '표절'이다. 저작물 침해의 하나인 표절은 미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외적 품질과 보편적 가치는 물론, 예술가 고유의 '독창성'마저 제 것인 양 갖다 쓴다는 사실에서 볼 때 일종의 '지식범죄'이다.

 

빈곤한 정신을 밑동으로 금전적 이득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점, 창의력 궁핍한 이가 저질 욕망을 이루려는 의도 아래 타인의 오랜 시간 노력과 경험을 강탈한다는 측면에서 표절은 파렴치한 행위다. 기망을 바탕으로 한 사기 혹은 '영혼의 도둑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절과 관련해 근래 벌어진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손 모씨 사건이다. 손씨는 전례 없는 상습 표절로 최근 몇 년간 5개의 문학상을 비롯해 공공기관과 기업, 재단 등에서 주최하는 공모전, 경진대회에서 다수 수상했다. 타인의 보고서, 사업계획서, 노래 가사, 슬로건까지 도용했다. 이 밖에 정치권 진출을 목적으로 추천서를 위조하는가 하면 일부 커뮤니티에선 변호사를 사칭하기도 했다. 거짓 이력이 얼마나 많은지 한 방송에선 자신조차 "다 기억 못 한다"고 했다.

 

그의 무모할 정도의 대범한 행각을 접한 시민들은 놀랍다는 반응이다. 온통 가짜로 도배된 인생도 그렇지만 표절인지도 모른 채 상까지 안겨준 심사위원들에 대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실제 관련 보도의 댓글에는 "심사위원이 다른 공모전 수상작조차 읽어보지 않았다는 게 착잡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안일함과 책임감 결여를 지적하는 글들도 눈에 띈다.

 

의아한 건 이처럼 대놓고 베껴도 전문가라는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이다. 이에 관련 심사위원들은 몇몇 언론을 통해 표절 여부를 걸러내지 못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저작권이나 도용 관련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표절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전수조사 차원에서 일일이 읽고 확인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거들었다,

 

언뜻 틀린 말은 아닌 것처럼 들린다. 아무리 전문가인들 셀 수 없이 많은 문학상 출품작들을 모두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지역의 소규모 문학상이라면 찾아내기 힘들 수도 있다. 출판되지 않으면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뭔가 개운하진 않다. 손씨의 경우 표절 종류와 범위, 지원 공모전의 수가 워낙 방대한데다 비슷한 시기에 계속해서 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심할 여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표절 대상이 기존 수상작이었다는 점, 공모전에서 숱하게 입상하는 동안 네티즌들이 제보하기 전까지 한 번도 발각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단지 출품작이 많아 표절 작품을 골라내는 게 쉽지 않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심사에 참여하는 최소 네다섯 명의 전문가들 중 한두 명이라도 보다 넓고 깊은 학식과 풍부한 현장경험을 갖췄다면 거를 수 있는 확률도 높았을 것이다.

 

동일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려면 문학을 포함해 각 예술 장르에 맞는 표절 검사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공공 차원의 표절방지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과 함께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전문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우선 객관성과 투명성을 기계적으로 강조하는 기관들의 정책부터 변해야 한다. 실력과 무관하게 단지 지역 인사이기에 심사위원 자격을 부여하거나 공정성을 기한다는 이유로 심사위원마저 공모하는 황당한 제도도 없어져야 한다.

 

■ 홍경한(미술평론가·DMZ문화예술삼매경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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