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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비평의 현실과 너머

미술비평은 당대 미술 흐름에 주목해 그 원인과 배경을 연구하고 작가와 작품 또는 예술 관련 현상을 비판적 시각 아래 해석 및 분석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궁극적으론 가치 유무(有無)를 따져 미학적·미술사적 정의와 방향을 제시하는 창작활동이다.

 

모든 비평이 그렇지만 미술비평 역시 사회·제도 등의 우리 사회 속 문제를 되묻고 표상하는 역할도 한다. 미술 가치에 대한 성취과정을 논리적으로 담아내는 것임과 더불어 사회 구조 내 감춰져 있는 것들을 들춰내어 표면화함으로써 새로운 담론 생성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비평가란 위와 같은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즉, 자신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체험을 기반으로 한 예술 활동의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넘어 예술공동체에 필요한 미래지향적 화두가 형성되게끔 돕는 주체 중 하나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다르다. 동시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도모하면서도 작가들의 작품이 문화적 자산일 수 있도록 격려하는 동반자로서의 비평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실제 존경할 만한 미술비평가가 몇 분 있다.) 부화뇌동과 안일함, 무사안일주의와 게으름, 권력 욕망의 '오염된 언어'를 말과 글로 채우는 이들 또한 드물지 않다.

 

이들은 개인의 비평적 실현이 집단 전체의 소유로 남는다는 것을 잘 모른다. 올바른 비평의 직능을 통해 사회와 예술을 잇는 매개자 혹은 촉매자로 위치하긴 고사하고, 비평가조차 읽지 않는 비평을 생산하며 '글공장'의 공장장을 자처하기 일쑤이다. 이름만 바꾸면 거기서 거기인 상투적인 주례사를 비평이라 자위하며 미술관이나 화랑이 선정한 작가들의 명망을 가시적으로 미화하는데 소임을 다한다.

 

희한하게도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엔 침묵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개인에 대한 공격은 때로 비겁하다 싶을 만큼 거침없으면서도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며 부당하게 얻은 미술 권력에는 아무 말 없곤 했다. 빤히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까지 훤히 알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생경한 이론과 과잉의 관념적 용어들로 채워진 난해한 잡문의 독(匵)에 갇힌 한국 미술 비평가들에게 비평이란 좋게 말해 감상의 세련된 버전이다. 비평적 태도는 기회주의 혹은 보신주의와 갈음된다. 적어도 비평의 역할과 비평가의 책무 따윈 기대하기 힘들뿐더러 올바른 판단력을 지닌 사상가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

 

다들 미술비평의 위기를 말한다. 비평계 내부에선 비평가의 존재가 희미해졌다며 심각해한다. 그런데 아무도 함께 걱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누구나 알고 있다. 설사 잃을 것이 많더라도 시대의 한가운데로 자신을 내던져 예술의 위기를 진단하고 발언하며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할 이들이 무언가에 기생하면서 대가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동의와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참다운 비평가는 사회와 예술을 제대로 식별해 공공의 가치로 전화시키는 경계 위의 사람들이다. 굳은 소신과 철학으로 당대 여러 난제들과의 숙명적인 대결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는 그저 어떤 자리와 기회에 관심을 두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정의롭지 못함을 부정할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평과 비평가가 설 자리도 없다. 문화 권력의 끝자락에라도 앉기 위해 몸부림치는 저급한 욕망이 자신을 포함한 시험의 무대인 비평 위에 놓인다면 더욱 그렇다.

 

■ 홍경한(미술평론가·DMZ문화예술삼매경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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