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소 꼴을 먹이러 다녔던 경험이 있다. 덩치는 컸지만 고사리 손에도 소는 잘 따라 왔다. 코뚜레와 연결된 줄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강줄기 옆 풀밭에서 소는 긴 혀를 내두르며 풀을 뜯었다. 풀이 없는 겨울에는 가마솥에 여물과 쌀겨, 마른풀, 뜨물을 넣고 쇠죽을 끓였다. 소 여물을 만들기 위해 섬뜩한 작두로 짚단을 썰기 위해선 두 사람의 호흡과 집중이 필수였다. 짚단을 넣는 사람과 작두를 내리는 사람 모두.
#. 최근 미국에서 '소 껴안기'가 유행이란 기사를 봤다. 자기보다 큰 소와 포옹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한다. 일부 농장에는 75달러 안팎의 유료 프로그램이 생겼고, 몇 개월치 일정이 예약되었단다. 미국 언론은 정(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소를 끌어 안고 눈물을 흘리는 풍경이라니…. 한 심리학과 교수는 포옹과 같은 '신체적 접촉', 함께 대화하고 식사를 하는 '심리적 접촉'이 일상생활에서 (정신건강에)중요하다고 전했다. 얼마나 정에 목말랐으면 소와 포옹하며 눈물을 흘릴까. '흩어져야 사는' 시대가 낳은 슬픈 현실이다.
#. 코로나19는 우리의 많은 일상을 바꿔놨다. 아픈 가족을 곁에서 지키지도 못한다. 외부인 출입금지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부모를 마음대로 만날 수도 없다. 요양병원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은 더 섭섭해 할 지 모른다. 모든 가족이 당신을 버렸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가족 모임은 물론 지인들과의 만남도 제한된다. 그래서 우울감이 커진다.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시대다. 최근 30여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퇴직한 선배를 만났다.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어려운 상황이 힘들다고 했다. 또 선후배나 친구들과의 만남을 자제해야 하는 분위기가 우울하다고 했다. 코로나19 이전 퇴직 선배들과는 또다른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소 껴안기 프로그램이 나올수도 있겠다 싶다.
#. 소 꼴을 먹이던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를 떠올린다. 배고팠지만 여유로웠고, 행복지수가 지금보다 높았다. 지금은 어떤가. 배부르고 먹을 것이 많지만 삶의 질은 그때 같지 않다. 불안과 걱정, 스트레스가 늘 함께한다. 현실을 사는 모든 이의 삶의 무게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와 나라꼴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게 한다. 스물다섯번의 대책에도 급등한 집값. 청년일자리 태부족에 3기신도시 땅투기 의혹까지. '벼락거지'로 내몰린 사람과 직장을 찾지 못한 '백수', 내집마련 꿈이 사라진 보통사람, 하루 버티기도 힘든 자영업 소상공인이 절망 중이다.
#. '일상으로의 초대'란 노래가 있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중략)내게로 와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달라질거야…'. 노래는 사랑하는 연인을 자신의 일상으로 초대하고 있다. 우리들의 일상은 무엇을 갈구하고 있을까. 소를 껴안고 울지 않기, 여럿이 모여 마스크를 벗고 어깨동무할 수 있는 팬데믹 종료,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고 두 손을 번쩍 드는 모습, 밀려오는 손님에 소상공인이 활짝 웃는 그날, 작두로 짚단을 썰 듯 부패한 탐관오리를 심판하는 날, 할머니가 손주와 껴안고 입맞출 수 있는 순간…. 그것들을 일상으로 초대하고 싶다. /파이낸스&마켓부 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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