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갑자기 '부동산 적폐'가 됐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의 부동산 투기는 과거부터 누적돼 온 폐단인 건 맞다. 하지만 지금 정권이 사용하는 '적폐'란 용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폐단'을 의미한다. 결국 LH 투기의혹을 부동산 적폐로 규정한다는 행간의 의미는 '지금 정권에는 잘못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으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 내내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적폐 청산만 외치고 있다. 뭔가를 이룬 실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적폐 청산을 본인들이 불리한 상황을 빠져나가는 수단으로도 수차례 악용해왔다. 본인들의 뜻과 맞지 않는 상대방들은 적폐세력이라며 몰아붙였다. 검찰도 적폐가 됐고 언론도 적폐가 됐다.
최근엔 사법부마저 적폐가 됐다. 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사법부를 적폐로 몰아가는 상황은 상식을 가진 국민을 아연실색케 했다. 적폐 청산이란 명분 앞에 법치주의도 무릎을 꿇었다. 자칫하다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적폐세력이 될 판이다.
지금 민심은 LH의 투기 의혹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 결과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4·7 보궐선거를 앞둔 정권이 다급해졌다. 그래서 나온 게 '부동산 적폐'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런 행태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이미 많이 봐 와서 충분히 예상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말씀대로 이번 사건이 과거 정권부터 누적돼 온 폐단이라면 왜 집권 초기부터 청산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심지어 그 적폐 세력 중에는 친정부 성향의 언론사에 있다가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지금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시는 분도 있다. 부동산 투자로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시세차익을 얻어 비난을 받자 청와대 대변인에서 물러난 분이다. 적폐청산을 하겠다면서 이런 분을 국회의원으로 들이겠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당과 친문 지지자들은 과거 정부의 잘못이 이번 정부에서 드러났는데 왜 이 정부를 비난하느냐고 주장한다. 신도시 1, 2기의 투기의혹도 들춰서 처벌하자고 주장한다. 지금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은 과거 정부의 공무원들이라는 주장도 한다.
그럼 지난 4년간 조용히 있다가 왜 갑자기 지금 그런 주장을 하나. 그걸 몰랐다면 자신들이 무능하다는 뜻이고, 알면서도 책임을 떠넘기고 초점을 흐리기 위해서 부동산 적폐란 프레임을 씌운다면 그건 국민을 속이는 행위다.
현 정부는 지난 4년간 25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지만 '아직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집값 안정을 위해 문 정부의 마지막 수단이라 할 수 있는 3기 신도기가 발표됐는데, 이미 그 정보를 안 일부 사람들이 시세차익을 거뒀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핵심을 흐리기 위해 부동산 적폐를 꺼냈다면 성난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에는 '양질전환의 법칙'이 있다. 일정한 양이 꾸준히 축적되면 어느 순간 질적인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물은 99도까지는 액체상태지만 100도가 되는 순간 액체에서 기체로 질적인 변화를 한다. 물론 99도까지는 액체 상태지만 물은 서서히 끓기 시작한다. 갑자기 아무 움직임이 없다가 수증기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민심은 100도의 기체로 변하는 단계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4년째 남 탓에 적폐타령을 하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정책의 비판자는 될 지언정, 정책의 실행자가 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 평가를 내리는 순간이 기체로 변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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