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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평론비 13000원, 그로부터 2년

작업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예술인들의 열악한 창작 기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돕고, 공간을 거점으로 폭넓은 네트워크를 도모하는 등의 '예술가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레지던스.

 

이와 같은 목적을 원만하게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의 일환으로 국내 레지던스들의 다수는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이란 걸 운영한다. 평론가, 기획자와 같은 매개자들을 초대해 대화하고 작품을 연구한 결과를 비평으로 도출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을 통해 현장과의 소통은 물론, 작업의 현주소와 미학적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러나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에서 과거와 분별 가능한 시각예술의 생산성을 담당해온 레지던스에 있어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은 의미 있고, 평론가들의 역할 역시 크지만 대우는 형편없기 일쑤다. 레지던스 운영 기관 중 일부는 초현실주의적 예산을 집행하며 평론가들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지난 2019년 4월, 미술평론가 이선영은 '공무원이 책정하는 이 지면의 원고료는?'라는 제목의 한 칼럼에서 공무원들이 책정하는 비현실적인 원고료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두 작가의 평론을 10포인트 크기로 A4 6장 넘게 써서 보냈는데 원고료가 13만원이 지급된 황당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말이 13만원이지, 공무원들이 받드는 지방자치 인재개발원의 수당 규격별 지급액 기준인 13포인트, 줄 간격 160%로 변환할 경우 A4 1장당 13000원 꼴이다. 또 하나의 작품이자 예술의 가치판단에 없어서는 안 될 비평의 대가로 누군가에겐 한 끼 점심값 정도일 뿐인 고료를 지급한 셈이다. 때문에 당시 SNS에선 보이콧 주장이 나오는 등 논란이 됐다.

 

그로부터 정확히 2년이 흐른 현재. 달라진 건 있을까. 안타깝게도 합당한 대가체계가 구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경상도에 위치한 한 공립 창작 레지던스는 올해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평론가에게 지급할 평론비로 20여만원을 책정했다.

 

순수 평론비라 해도 터무니없이 적은데, 이 20여만원에는 최소 한 번 이상 수백 킬로미터를 왕복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주유비, 톨게이트비는 물론, 한 달 가까이 연구하며 써야 할 지적 노동에 대한 몫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나마 세금을 떼면 재능기부와 진배없어진다.

 

소속 레지던스 작가들이 보기에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의를 제기하자 기관은 작가들이 개인적으로 '아는 평론가'에게 부탁하던가 아니면 자신들이 '돈에 맞는 평론가'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단다. 그럼 작가들이 개인적으로 '아는 평론가'들에겐 20만원에 비평을 부탁해도 된다는 것일까. '돈에 맞는 평론가'라는 표현이 작가와 평론가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것임을 모르는 것일까.

 

현실 무감각한 일부 공무원들의 병적 행동양식이야 하루 이틀 된 게 아니지만, '돈에 맞는 평론가' 운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건 사고의 기능적 결여마저 의심케 한다. 창작자들에 대한 존중의식은 고사하고 평론의 역할과 가치 따윈 고려의 대상조차 아님을 말해준다.

 

불합리한 제도와 정책 개선엔 관심 없이 행정만 숭배하는 관료주의의 망령이 아직도 미술계를 배회한다. 여전히 그들 특유의 법규만능과 획일주의, 선례답습, 책임회피, 순간만 모면하려는 태도의 관행 등이 하나의 '틀'로써 현실과 괴리된 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대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까.

 

■ 홍경한(미술평론가·DMZ문화예술삼매경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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