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나라. "예금이랑 적금이랑 뭐가 다른데요?". 이 나라의 20, 30대 중에는 예금과 적금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이들도 많다. 전 국민의 금융이해력을 조사했더니 복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10명 중 4명도 안됐다. 은행에서 가입하는 모든 상품은 예·적금 처럼 절대 손실이 나지 않고 원금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이라고 다르게 보지 않는다. 공모주에 투자했다가 주가가 폭락하자 당당히 환불을 요구하는 '주식 환불원정대'는 소소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이유는 평생 돈에 대해 배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고, 커서도 배울 기회는 없다. 금융문맹들인 셈이다. 해외 선진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학교에서의 금융교육을 의무화했지만 이 나라는 대학 입시에 들어가지 않으면 도통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금융사들이 학교와 짝지어 '1사 1교' 금융교육을 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쓸데없는 거 배우는데' 시간을 뺏긴다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져서다.
#. B나라. 이 나라 국민은 모두가 투자자다. 20세 이상 인구가 4312만명인데 주식거래 활동 계좌 수 역시 4064만개에 달한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주식투자 계좌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셈이다. 원래 B나라 국민들의 투자 방정식은 대부분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나머지 여윳돈은 안전하게 예금에 넣는 것이었다. 180도 바뀐 것은 몹쓸 감염병이 전 나라를 휩쓸면서부터다. 시중 유동성을 흡수한 주식시장이 급등하면서 20대를 주축으로 너도나도 주식투자에 나섰다.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동학개미'는 물론 해외주식에 대규모의 자금을 쏟아붓는 '서학개미'도 넘쳐난다. 이번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다. 단기간에 몇 억원을 벌었다는 직장인들 투자기가 입에 오르내리며 20, 30대들 사이에 코인 광풍이 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는 국내증시, 밤 10시 반부터는 해외증시를 봐야한다. 가상화폐는 24시간 거래라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집집마다 투자열기로 잠을 못 이룬다.
#. A, B는 아이러니 하게도 사실 같은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됐다. 시행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만사항과 건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왜 자꾸만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하는지 제대로 짚어보지 않고 금소법으로 모든 책임을 판매사인 금융사에만 떠넘겼기 때문이다. 펀드라도 하나 가입하려면 고객과 금융사 직원 모두 그야말로 곤욕을 치러야 한다. 직원은 향후 불완전판매 시비가 없도록 긴긴 투자설명서를 녹취가 잘 되도록 또박또박 읽는다. 고객은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투자설명서를 다 듣고 나면 비슷한 질문에 수차례 답하고 서명해야 한다. 현장에서 법을 적용하는데 있어 필요한 분야별 가이드라인은 처음부터 없었다. 시행 전에 나와야 했을 가이드라인은 이제서야 만들어 가고 있다. 모호한 법령에 대한 명확한 해석도 아직은 미완성이다. 모든 이들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금융소비자들이 제대로 보호만 받을 수 있다면 그래도 의미가 있을 터. 코스피 지수에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하려면 한 시간 반이 걸리는데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상화폐는 누구 하나 투자위험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라도 만드는 순간 법정화폐나 금융투자상품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지극히 탁상행정적인 이유에서다. 정작 보호해줘야 할 금융소비자는 또 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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