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의 시선]을지OB베어의 맥주·노가리를 계속 맛보고 싶다
"을지오비베어의 최수영입니다. 내일(26일) 일출시 강제집행 예정입니다."
4월 마지막 일요일인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원조가게로 잘 알려진 을지OB베어 최 사장님로부터 카톡으로 문자가 왔다. 최 사장님의 장인인 강효근 1대 사장님은 1980년 12월 당시 이곳에 을지OB베어를 연 장본인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1대 사장님의 뒤를 이어 딸인 강호신·최 사장님 부부가 명맥을 유지하면서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덧 호프집은 40년이 훌쩍 넘었다.
작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해 방문객이 줄었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어둑해질 무렵부터 가게며 주변 골목은 노가리 한마리에, 생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서울 한 복판에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생맥주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치맥'(치킨+맥주)이 일상화됐지만 그땐 그랬다. 접하기 쉽지않았던 생맥주에 노가리를 곁들인 것은 을지OB베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맛도 일품이었다. 노가리에 찍어먹는 소스를 직접 개발해 만드시던 1대 사장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주변 공구상가에서 40년 가까이 일을 하며 을지OB베어를 자주 찾았다는 한 중소기업 사장님의 말이다.
서울시는 을지OB베어와 노가리골목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소상공인 정책을 관장하는 중소벤처기업부는 백년가게 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을지OB베어를 명단에 올렸다.
그런데 이 호프집 사장님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며칠전 인터뷰를 했던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낸 것이다.
"세월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겠죠. 그래야 보존할 가치가 있을테구요. 이 자리에, 이 모습으로, 41년 동안 손때묻은 그것 때문에 '백년가게' 간판 달아준거 아닌가요. 우린 이제 방법이 없어요."
강호신 사장님이 인터뷰를 하며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도 했다.
"한 사람이 (노가리)골목을 장악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회적 공공성은 필요없는 건가요. 같이 사는 사회에선 (공존도)필요하지 않나요. 서울미래유산도 그냥 걷어가세죠."
남편 최수영 사장님은 옆에서 아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할 말이 많지만 말을 아끼고 싶다. 나중에, 나중에 그냥 산화하겠다."
수 십년간 장사를 하며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온 대한민국 소상공인 부부의 체념섞인 말도 나왔다.
부부 사장님이 매일 매일이 살얼음판이라고 이야기한 며칠 뒤인 월요일(4월26일) 새벽부터 강제집행 소문이 들려왔던 것이다. 새벽녘에 가서 만난 부부의 얼굴은 초췌했다. 밤잠을 설친 탓이다. 지인들, 시민단체, 주변 상인들이 혹시나 모를 강제집행에 대비해 밤새 자리를 함께 지켰기에 그나마 덜 외로웠을 터다.
낮이되면 손님들로 채워졌어야 할 가게 앞은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쇠사슬로 묶인 차가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이날은 다행히 예고됐던 강제집행은 없었다. 하지만 서울미래유산과 백년가게 간판을 동시에 내건 을지OB베어는 하루 하루가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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