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Lot).518'이라는 와인이 있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 와인을 만든 와이너리는 아마 와인 애호가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바로 호주의 국보급 와이너리 펜폴즈다. '펜폴즈 그랜지'는 호주 국가문화재로 등재돼 있을 정도다.
로트518은 호주의 이름난 와이너리가 중국 고객들을 위해 내놓은 주정강화 와인이다. 와인병에도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주정강화 와인이란 와인에 주정(증류주)을 섞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이다. 보통은 포도를 증류한 브랜디를 사용하는데 로트518은 중국술인 바이주(白酒)를 섞었다.
와인 전문가가 아닌 와인 초보자가 봐도 와인과 바이주의 조합은 미스매치다. 바이주는 수수 등을 누룩으로 발효시킨 증류주다. 주정강화 와인의 주정으로 쓰기엔 특유의 독특한 향이 너무 강하다.
펜폴즈는 로트518을 내놓으면서 공식적으로는 '전통적인 와인 제조의 관습을 깨뜨린 혁신'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누가 봐도 중국에 보내는 격한 애정표시일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호주 와인시장의 가장 큰 고객은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 중국은 매년 호주 와인 총생산량의 40% 가까이를 수입했다.
허니문 관계가 깨진 것은 지난해 중국과 호주가 외교적 마찰을 빚으면서다. 호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우한 기원설을 조사해야 한다고 표명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4국 협의체)에 참여하면서 중국은 경제 보복을 시작했다. 호주산 농산물과 소고기 등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 제한 조치를 취했다. 와인 역시 조사 대상에 올랐고 최고 200%가 넘는 반덤핑 관세가 부과됐다.
와인 같은 주류는 세금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의 와인 가격이 경쟁력이 없는 것도, 홍콩의 와인 시장이 급성장한 것도 다 세금 때문이다.
미국은 올해 초 프랑스 와인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25%의 징벌적 관세로 작년 미국의 프랑스 와인 수입은 18%나 줄었다.
관세 수준도 그렇지만 이번과 같이 경제 보복의 희생양이 됐다면 단순히 관세부과로 높아진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판매가 불가능해졌다고 봐야 한다.
실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의 호주산 와인 수입 제한으로 지난달 선전항에만 8000리터가 넘는 호주산 와인이 압류됐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호주의 대중 와인 수출규모는 이전 대비 96%나 급감했다.
누군가의 위기는 다른 이에겐 기회가 될 수 있는 법. 호주의 와인 산업은 위기를 맞으면서 세계 최대 소비처인 중국시장을 노리는 곳이 많아졌다.
첫번째 수혜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남아공 와인은 중국과 호주의 외교 전쟁 이후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아졌다. SCMP에 따르면 중국으로의 남아공 와인 수출은 지난 석 달 동안 50%나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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