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삼성가(家)와의 온갖 연고를 내세워 유치 경쟁에 뛰어든 지방자치단체만 15곳이 넘고, 이들이 내세우는 미술관 유치의 당위성 역시 가지각색이다.
경주시는 민족 예술(?)의 발생지를 유치의 구실로 삼고 있으며, 경기 용인시와 평택시는 삼성전자 사업장 소재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경남 의령군은 고 이병철 회장의 출생지라는 이유를, 경남 진주시와 전남 여수시는 고 이병철 회장이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과 하트 모양의 섬을 매입했다는 것을 유치의 근거로 하고 있다.
다들 말 같지도 않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기증자의 취지와 목적을 고민하거나 기증품의 가치, 학술연구계획 등을 꼼꼼히 따진 결과로 유치의 합당함을 인정받을 만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합리적 이해나 공감도 불가능하다. 문화적, 역사적, 미술사적 맥락 내에서 재구성 되어야 할 기증품임에도 그들에겐 단지 어떻게 하면 임기 중 뭐라도 하나 그럴싸한 성과로 포장할 수 있을까 싶은 정치적 목적만 부유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건희 미술관'을 서로 차지하려 눈이 벌건 지자체들의 양태에 한몫한 건 정부의 단순함과 안일함이다. 자생적 혹은 자발적 논의로 비롯된 게 아닌 "별도의 전시실이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조선 임금 어명 받들 듯 서둘러 '이건희 미술관' 신설 계획을 내놓은 정부의 치밀하지 못한 태도가 문제의 발단인 셈이다.
사안을 쉽게 바라본 정부의 사고도 한심하지만 지역균형발전과 문화 분권을 볼모로 한 업적 과시, 홍보 수단으로서의 미술관 건립이라는 뻔한 계산이 깔린 지자체들의 모습 또한 목불인견이다. 그들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기증한 2만 3천여 점 미술품과 문화재는 정치꾼들의 성과지표로 대체되기에 딱 좋은 아이템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모르는 줄 안다.
사실 지자체의 다수는 삼성가에서 기증한 국보와 보물급 작품을 품을 수준이 안된다. 지자체장들은 자기 지역에 있는 미술관 천장에서 물이 새고 소장품을 전문적으로 연구·관리하는 부서조차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혹은 알면서도 무신경하다.) 연간 소장품 구입예산을 단 1원도 주지 않는 공립미술관이 있고, 학예사라야 아무리 꼽아도 손가락이 남아도는 게 현실이다.
그뿐이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갖다 줘도 당장 배부터 갈라 먹는 게 그들이요, 남루한 미의식을 자랑하듯 조악한 조형물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청주인지 충주인지도 몰라 방송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엄연한 현주소다. 그럼에도 공짜라니 양잿물도 마실 기세다.
욕심 내지 말고 있는 것이라도 제대로 운영해라. 정치적 관점에서 벗어나 시민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고 진정성 아래 기존의 것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을 지부터 고민하는 게 순서다. 능력도 안되면서 과욕을 부리면 체하는 법이다.
덧붙여, 문화예술에 관한 전문성이라곤 거의 없는 문화체육관광부 황희 장관도 이참에 자중할 필요가 있다. 황 장관은 최근 '국민 접근성'을 이유로 미술관을 지방에 둘 경우 '빌바오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수도권 입지 발언으로 지자체 간 갈등을 부추겼다.
빌바오 효과는 엄밀히 말해 '구겐하임 효과(Guggenheim Effect)'와 무관하지 않고, 세계 유명미술관 중 지방, 아니 거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은 미술관은 셀 수 없이 많다. 얼마 전 미술관에 왜 수장고가 필요하냐고 따지듯 묻던 문체부 직원이나 장관이나 어쩜 그리 무지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 홍경한(미술평론가·DMZ문화예술삼매경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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