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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훈민정음과 'NFT'

일제강점기에 사재를 털어 민족문화유산을 지킨 간송 전형필(1906~1962). 그의 호를 딴 간송미술관은 1938년 세워진 '보화각'이 전신이다.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 고미술 연구와 체계적 보존을 위해 설립된 사립미술관이다.

 

간송미술관의 위상과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장품에서 나온다. 세종 때 편찬한 '동국정운'을 비롯한 국보와 현존 최고 목판본 거문고 악보인 보물 '금보', 그리고 조선말기의 화원인 장승업 외에도 정선, 안평대군, 심사정, 김정희 등의 서화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김홍도, 김득신과 함께 조선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의 그림 역시 대부분 갖고 있다. '미인도'가 대표적이다.

 

간송미술관은 한국 회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들과 전적류, 도자류가 망라된 소장품으로 연구자들에겐 일종의 성지처럼 취급됐다. 처음엔 신윤복 관련 텔레비전 드라마가 전시와 겹쳐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으나 전시가 열릴 때마다 수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은 한민족의 얼이 담긴 소장품이었다.

 

그런데 간송미술관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장품들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 왔다. 재정난이 알려진 건 지난해 5월 소장품인 보물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출품하면서이다. 당시 각각 15억원에 내놓아 안타까움과 충격을 줬다.

 

최근엔 한글 창제 원리가 기록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NFT(Non Fungible Token, 대체불가토큰)'로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한정판 100개, 각 1억원) 국보나 보물을 NFT로 제작하는 첫 사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이지만 문화재 지정 이전부터 사유재산이므로 NFT 발행에 법적인 문제는 없어 보인다. 저작권에서도 자유롭다.

 

허나 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다 해도 국가 상징 문화재를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문화재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훈민정음'을 디지털로 제작해 '가치를 계승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많다.

 

사실 문화재를 디지털로 만들어 보존하는 것과 디지털 이미지로 돈을 벌겠다는 건 다른 개념이다. 단지 1억짜리 데이터, 가상의 자산일 뿐인 NFT가 간송미술관의 재정난을 해결하는 데 있어 과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불명확하다. '훈민정음'은 실물이 존재하므로 유일성과 원본성을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100개나 되어 희소성도 떨어진다.

 

한국의 사립미술관들은 재정의 어려움을 사재 출연으로 메우면서도 비영리 공공기관으로 등록해 영리행위를 배척한다. 오래 전 전국의 농지와 종로 상권에서 나온 자금으로 귀한 문화재를 수집했던 간송도 그랬다.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토지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부채 청산을 위해 생가마저 처분하면서까지 문화유산을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이 심해졌고 보물을 경매에 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NFT 발행 또한 여러 수익원을 고민한 끝에 내린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NFT는 투기 성격이 짙은데다 불안정한 측면이 크기에 신중한 게 좋다. 공공재를 다루는 일련의 방식에 관한 국민들의 정서적 괴리도 발행 결정에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중요한 건 소유욕과 비례한 환금성만 회자되는 무대에 우리의 자산인 국보와 보물이 자주 등장하는 상황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열악한 재정은 사립미술관 전체의 문제라는 사실에서 사회적·문화적 기여도에 맞는 지원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참에 사립미술관 관련 제도에 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면 어떨까 싶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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