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의 콘트리트관을 쌓아 올린 작품 '우리가 이미지를 내쉴 때'로 후기자본주의사회가 만든 난민 위기를 다룬 쿠르드족 출신의 작가 히와 케이. 그리고 한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통 및 자연생태의 소멸을 지적한 캄보디아의 예술가 크베이 삼낭의 작품 '영혼의 길'.
실제 난민으로,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희생당하는 정치적·사회적 현실을 묘사한 히와 케이의 작품과 무분별한 개발로 오염되거나 파괴되는 자연환경을 표현한 크베이 삼낭의 작품은 지난 2017년 '카셀도큐멘타'에 출품해 큰 주목을 받았다. 예술은 세계를 탐구한 결과이며, 사회 속 실천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반향도 컸다.
최근 두 작가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바로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대구미술관이 새롭게 기획한 주제 발굴전 '시를 위한 놀이터'이다. 한국현대미술의 발상지인 대구 지역 미술사를 정리하는 한편, 예술의 역할과 가치 확산에도 관심을 기울여온 최은주 관장의 의지가 반영된 연례 특별전 '대구포럼'의 일환이다.
'대구포럼' 서막을 연 '시를 위한 놀이터'는 "시의 외피를 한 예술"(기획 이정민 학예사)이다. 때문에 전시는 시적 문법을 따른다. '놀이터'라는 명사 아래 참여 작가 8명(이강소, 비아 레반도프스키, 오쿠보 에이지 외)의 창의적 과정이 흡사 서정시처럼 전개된다. 그러나 작품 각각의 면면은 묵직하다. 대표적인 작업이 히와 케이와 크베이 삼낭의 영상이다.
이번 전시에 히와 케이는 작품 '아버지의 컬러시대'(2012)와 '프레이미지/모국어만큼이나 눈이 먼'(2017)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였다. 카셀도큐멘타에서 화제를 모은 크베이 삼낭의 작품 '영혼의 길'(2016~2017)도 다시 만날 수 있다.
이중 히와 케이의 작품 '모국어만큼이나 눈이 먼'은 고향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해 걸어가는 자신의 여정을 담은 작업이다. 화면에는 작은 거울 여러 개를 단 긴 막대기를 콧등에 얹은 채 균형을 유지하며 걷는 작가의 모습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난민 문제의 실질적 배후인 자국 이기주의와 인간 존재에 관해 말한다. 위태로운 작가의 걸음과 가라앉은 작가의 내레이션만으로도 난민으로서의 경험이 전이되고도 남는다.
크베이 삼낭의 작품 '영혼의 길'은 캄보디아 아랑 계곡에 거주하는 원주민 공동체 'Chong(총)'을 모태로 한다. 작가는 협업자들과 16개월 동안 원주민들과 생활하며 지역적 습관을 배웠고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리곤 자연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며 재생 불가능한 처지에 놓인 자연생태와 전통의 소멸에 대해 언급한 작품 '영혼의 길'을 만들었다. '시를 위한 놀이터'에는 소개되지 않지만 토템에서 영감을 받은 11개의 동물 탈도 동일한 선상에서 구현된 설치이다.
작가가 '영혼의 길'에서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개발에 의해 사라지는 삼림과 밀매의 대상이 되는 동물, 급속한 현대화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 및 무너지는 자연 서식지에 대한 우려이다. 캄보디아를 무대로 하고 있으나 자본주의 폭력 앞에 증발하는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자연환경 문제와 국가를 불문하고 강제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시선이 원시적 풍경 속에서 기이하고도 세밀한 신체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돈의 노예화에 종속된 채 미술조차 기획화 되고 있는 작금의 미술구조에서 '시를 위한 놀이터'는 예술의 가치를 포함해 현재의 시간 안에 존재하는 '참된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히와 케이와 크베이 삼낭의 작품은 자본주의의 욕망이 지배하는 체제에서의 삶, 나아가 어떤 게 예술의 역할인지 질문한다. 전시는 9월 26일까지.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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