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치아가 흔들리면 어머니는 바느질 실로 이를 꽁꽁 묶고 줄을 길게 늘어뜨려 한쪽은 문고리에 묶었다. 그리곤 다가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마를 툭 쳤다. 흔들이던 이는 실과 함께 튕겨져 나왔다. 잇몸에선 피가 나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는 실에 묶여 있는 이를 지붕 위로 던지며 '고수레~'라고 했다. 음식은 아니었지만 나의 건강을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불편했던 이가 빠지니 홀가분해졌다. 흔들리던 이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음식 먹기도 한결 쉬웠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해결되면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속담이 생겼나 보다.
지난 20일 예정됐던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행정소송 1심 선고가 27일 이뤄질 예정이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중징계(문책 경고)를 받은 손 회장이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이다. 법원 관계자는 1심선고 1주일 연기 사유에 대해 "논리를 더 다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DLF사태 뿐만 아니라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에서도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마련 의무 위반'을 이유로 금융권의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다. 이번 1심 선고에 금융권이 주목하는 이유다. 법원의 1심 선고에 따라 금감원과 금융회사는 극과 극의 결과를 받아 든다. 한쪽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더 두려운 쪽은 금융당국이다. 바라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나오면 무리한 제재가 도마 위에 오른다. 우리금융 이외의 많은 금융회사의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이 뻔하다. 법원 스스로 논리를 다듬기 위해 선고를 미뤘다는 것은 이미 결론이 났다는 의미다. 그 결론에 대한 논리를 더 명확히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도 금융권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혹시 금감원에 시간을 벌어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내부통제 미작동이 금감원에서 먼저 일어났다는 의심이다. 감사원의 금감원 감사보고서는 '(자산운용사의 부실운용 등)위반사항을 확인하고도 즉시 현장검사를 실시하거나 수사기관 및 금융위에 통보하지 않는 등 적기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건전성 감독에 실패했고, 사태를 인지하고도 사고를 미리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감독당국은 대(對)국민 사과 조차 없었다. 상품을 판 금융회사가 모든 책임을 지라고만 한다. 그래서 금융사는 억울하다. 27일 예정된 법원의 1심 판결이 중요한 이유다.
많은 금융회사는 이번 선고를 통해 앓던 이가 빠지길 기대하고 있다. 밤낮으로 괴롭히던 것이 없어져야 편안해진다. 흔들리는 이는 뽑아야 한다. 그래야 먹을 수 있다.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란 '썩은 이'가 빠지지 않으면 금융시장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영업 자체가 힘들다. 하나의 상품을 개발해 팔 때 마다 CEO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은 사실상 멈췄다. 이런 상황에서 일류 금융사, 글로벌 금융사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금융회사는 CEO가 비전을 제시하고 도전할 수 있어야 발전한다. 금융시장이 법원의 합리적인 결정을 기대하는 이유다. 지난 여름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단체 결승전. 오진혁 선수는 금메달이 결정되는 마지막 한 발을 쏘면서 혼잣말 처럼 이렇게 말했다. '끝~'. 많은 이들이 원한다. 이번 법원의 판결이 금융사의 근심이 끝나는 시발점이 되기를. /파이낸스&마켓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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