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경주시 교동 고택 문화재 지정
화재 소실에도 웅장한 조선 후기 양반가 그대로
대이어 지킨 육훈…'욕심 경계하고 어려운 이 도와야'
2019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헌신하고 교육 사업한 기록 나와
【경주(경북)=김서현기자】 경주시 교동 '경주 최부자댁'이 중요민속문화재 제27호 지정 50주년을 맞았다. 1971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경주 최부자댁은 1970년 있었던 화재로 지금은 절반 정도만 남았지만 18세기 중엽에 2000평 부지와 1만 평 후원의 99칸 대저택으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해방 후에도 일가가 거주한 이곳에는 그간 집을 오고간 수많은 이들에 대한 자료와 함께 가족들이 고치며 살았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나 최부자댁이 특별한 이유는 대를 이어 이웃과 함께 했던 여민(與民)정신 때문이다. 지금도 최씨 일가는 고택 옆에 경주최부자 아카데미를 열어 가문이 이어온 정신을 알리고 있다.
최부자댁 곳간 앞에는 과객을 위한 쌀통이 하나 있다. 쌀통에는 위로 난 동그란 구멍이 있는데 양손을 넣어 쌀을 양껏 꺼내기엔 조금 작다.
최창호 경주최부자아카데미 상임이사는 "지나는 과객을 위한 쌀통인데, 여기에서 쌀을 꺼내 누구나 가져갈 수 있게 했다"며 "자신이 먹을 수 있을 만큼만 꺼낼 수 있는 크기인 이유는 욕심을 경계하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욕심 부리지 않으면서도 남을 위하려는 마음은 최씨 일가가 대를 이어 지킨 육훈에 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1년에 1만 섬 이상 재산을 모으지 말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지 말라 ▲집에 온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이 없게 하라 ▲가문에 시집온 며느리는 3년 무명옷을 입으라 등이다.
권력과 재산을 탐하지 않고 주변 백성을 살리는 내용이다. 11대조 최국선(1631~1681)부터 큰 부자가 된 일가는 육훈을 철저히 지켰다.
마지막 '최부자'였던 최준(1884~1970)도 가문의 가르침을 지켰다. 최준은 이사로 있었던 백산무역회사를 통해 상해 임시정부의 가장 큰 자금 공급처 역할을 했다. 그의 동생 최완은 최준과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임시정부 재정위원으로 일했다. 이들은 최씨 일가의 재산을 통째로 담보로 걸고 거액을 대출받아 독립자금으로 댔다. 2019년 창고에서 일제강점기 오간 발견된 수 만 건의 문서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최 상임이사는 "당시에는 혹시나 조선의 거부들이 독립운동을 지원할까봐 일제가 재산이 드나드는 것도 감시했다고 한다. 수많은 친일파들의 명함과 독립운동가들의 명함이 동시에 발견된 게 그래서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집안 어르신들은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교육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수많은 지식인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고 경주 월성초등학교의 전신인 월성여학교를 세웠으며 지역 유지들과 함께 대구대학교를 세웠다. 비록 1961년 박정희 정권에 대구대학교와 일가의 모든 재산이 뺏겨 지금의 영남대가 되었지만 마지막까지 최준은 그저 영남대가 잘 되기만을 바란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일가는 경주최부자아카데미를 통해 산처럼 쌓인 고문서들의 번역을 이어가며 경주 최씨 일가가 실천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닥친 후에는 많은 사람들을 받기 어려워졌지만 방역수칙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라면 종종 연수, 워크숍 등을 받고 있다. 문화재인 경주 최부자댁은 언제든 관람할 수 있다.
경주향교 옆에 자리한 경주 최부자댁은 향교의 지붕보다 1m 낮게 지어져있다. 처음부터 땅을 파서 낮춰지었다.
최 상임이사는 "자신을 낮추려는 마음이 이곳에 서려있다.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주변이 더욱 높게 보이고 사람으로서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주변을 더욱 돌아봐야 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감시 속에서 고초를 겪기도 하면서도 어르신들이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것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