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월급 날이면 신문지에 둘둘 만 소고기 한근을 사왔다. 구워 먹을 정도의 소고기 양이 아니어서 소고기 무국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모처럼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 때문에 집 안 분위기는 붕 떠있곤 했다. 물론 이건 살림살이가 좀 나을 때 얘기이고, 그렇지 못하면 소고기 무국 잔치는 건너뛰는 게 다반사였다. 잘 살고 못 살고가 소고기로 갈렸던 60, 70년대의 이야기다.
형편이 훨씬 더 풍요로워져서 21세기 하고도 2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소고기는 잘 먹고 못 먹고의 지표다. 무슨 기념일이나 귀한 지인들이 오면 가장들이 큰 맘 먹고 소고기를 먹기 위해 지갑을 열곤한다. 그러나 요새는 소고기 외식이나 소고기 회식 자리는 엄두도 낼 수 없게 됐다. 한우 등심 한근( 600g) 가격이 무려 13만원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구가 4명 이상 되는 집안은 음료 포함해 소고기 잔치에 70만∼80만원 정도를 지출해야 할 정도니 소고기는 당분간 금기어가 될 수 밖에 없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월급 빼고 안 오르는 게 없다"는 농담 섞인 푸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전기 등 에너지값부터 식자재까지 모든 생활물가가 치솟으면서 10월 물가상승률이 10년 만에 3%대로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3분기 물가상승률은 2.6%로 9년여 만에 최고치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도 1년 전보다 2.5% 올라서 6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품목별로 보자면 먼저 연초부터 시작된 식료품 가격 오름세가 여전하다. 계란값 같은 경우는 올 초부터 고공 행진했는데 마트에 가면 15개들이 한 팩에 8000~9000원짜리 계란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소비자단체 조사 결과 올해 3분기 76개 생필품 가격이 1년 전과 비교해 평균 4.4% 상승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인한 글로벌 물류난으로 식품 수입 가격도 무섭게 오르고 있다. 64년 만에 찾아온 10월 한파에 채소 가격도 난리다. 양상추에 쪽파, 상추 등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크게 올랐고 품귀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재래시장에서는 양상추 한 통이 5500원에 팔리고 있다. 평년보다 2배 가깝게 오른 가격이다. 그러다보니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선 햄버거에서 양상추가 사라졌다. 한 패스트푸드점은 양상추가 부족하다며 대신 무료음료 쿠폰으로 대체한다고 공지하고 있다. 이른바 '앙꼬 없는 찐빵'격인 '양상추 없는 햄버거'가 등장한 것.
설상 가상으로 국제 유가 급등 탓에 휘발유값은 1년 새 30%나 올라 L당 1700원 선을 넘어섰다. 7년 만의 최고치다. 서울 시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800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지난 26일 뒤늦게 유류세 20% 인하 대책을 발표했다. 다음 달 12일부터 내년 4월30일까지 6개월간이다. 그러나 다락같이 오르는 유가를 잡는데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코로나 불황으로 2분기 가구당 소득은 1년 전보다 0.7% 줄었다. 반면 물가 상승 탓에 가구당 지출은 4% 늘었다. 살림살이가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뜻이다. 물가 상승은 특히 저소득 서민과 자영업자에게 더 치명적이다. 서민층은 먹고 사는 필수 생활비 부담이 커지고, 자영업자는 재료비가 오른 만큼 수익이 줄어 들기 때문이다.
집값 고공행진을 막는다고 정부가 아예 돈줄을 죈 것도 서민의 고통을 키웠다. 그 부작용이 드러나자 대출 규제를 다소 완화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출금리까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에 이어 물가, 금리까지 급등하면서 민생은 지금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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