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모두 치르고 나오니 길거리를 지나며 나는 음식 냄새, 담배 냄새마저 어느 품종의 와인에서 나는 아로마는 아닐까 싶었다. 공부할수록 부족한 점만 보여 시험 직전 거의 일주일은 한 두시간도 제대로 못자고 밤을 새웠나보다. 5월에 시험을 봤는데 결과가 다섯 달이 지난 10월에야 나왔다. WSET 레벨3에 도전한 후기다.
WSET는 와인과 스피릿 교육인증(Wine & Sprits Education Trust)의 약자로 국제 와인 자격이라고 보면된다. 영국에서 시작됐지만 전 세계 와인업계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선호도가 높다.
생업이 아니라 취미 수준으로 와인을 공부한다면 WSET 레벨 1, 2가 적당하다.
레벨 1은 와인 입문 과정이다. 주요 와인 스타일에 대한 기본 상식만 갖춘다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다. 필기시험만 있고, 합격률은 100%다.
레벨 2는 와인 포도 품종이나 양조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인 수준까지 들어간다. 주요 품종의 특징은 물론 산지별 차이점도 알아야 한다. 테이스팅도 향의 강도나 당도, 산도, 무게감 등까지 파악해야 한다.
이번에 기자가 도전한 자격은 레벨 3다. 전 세계 주요 와인의 스타일과, 품질, 가격과 관련된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레벨 1, 2가 와인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면 레벨 3는 단순 지식 습득을 넘어 '왜'인지를 고민하는 단계다. 쉽게 예를 들면 레벨 2까지는 한국에서 귤은 제주도에서 많이 나고, 포도는 경상북도 영천이 주요 산지라는 것을 알면 된다. 레벨 3는 왜 귤이 제주도에서 잘 자라는지 기후와 지리적 요소 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객관식 시험이라면 '해양에 의한 냉각 효과에 노출되는 지역'이 컬럼비아 밸리와 로스 카네로스, 야키마 밸리, 오카나간 밸리 중에 어느 곳인지 바로 짚어내야 한다. 논술 문제에서는 제시된 와인 레이블만 보고 기대되는 향의 특징과 당도 및 산도 수준을 써낼 수 있어야 하며, 특정 토양이 포도 재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데 설득력있게 풀어내야 한다.
시음 시험에서는 시각적인 부분부터 후각, 미각 등을 종합해 이 와인의 품질이 어느 수준인지, 지금 마시기 적합한 시기인지 아니면 더 숙성하면 될 지 등을 판단한다. 꽃향이나 과일류의 1차적인 향은 물론 양조와 숙성 과정에서 발현되는 바닐라나 삼나무향, 가죽 등 2, 3차 향까지 짧은 시간 내에 잡아내야 한다.
이론과 시음 시험에서 각각 55% 이상 득점해야 합격(Pass)이다. 65~79% 득점은 우수 합격(Pass with merit), 80% 이상 득점은 최우수 합격(Pass with distinction)이다.
WSET 레벨 3부터는 어디가서 자격증을 내밀면 전문가로 인정을 받는다. 명함 등에도 공식적으로 'WSET Certified' 로고를 기재할 수 있다. 와인을 시음하면 감별하고 평가할 수 있다. 합격률도 10% 안팎으로 낮다. 지금은 한국어로 시험에 응시할 수 있지만 영어로만 응시할 수 있었던 시절엔 합격률이 더 낮았다고 한다.
다섯 달이나 애태우며 기다린 결과는 합격. 그것도 '우수 합격'이다.
이론 필기시험이 불안하더니 역시 그냥 '합격'에 그쳤다.
시음에서 '최우수 합격'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 한국 응시자들이 시음에 유독 약하다는데 다행히도 시음 와인잔을 받자마자 안도했다. 화이트와 레드와인 모두 준비했던 예상 와인 가운데 나왔다.
레벨 3 다음은 디플로마로 불리는 레벨 4다. 디플로마는 아직 국내에서는 10명 안팎에 불과하며, 자격을 딸 수 있는 과정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국내 체류자라면 홍콩 등 해외에 위치한 교육기관에 등록해 일정 부분 온라인 수업을 듣는 방법이 있긴 하다. 테이스팅이나 시험 응시 등 몇 번은 직접 가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하는데 팬데믹으로 이마저도 지금은 불가능하다.
절정은 레벨5, 와인 마스터(Master of Wine)다. 와인 마스터들은 와인 심사, 테이스팅 행사, 평론 등을 통해 와인업계에서 권력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5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전 세계 31개국, 419명의 와인 마스터가 전부다. 지난 2008년 동양인 최초의 와인 마스터로 한국계인 지니 조 리가 이름을 날렸지만 한국인으로 와인 마스터 타이틀을 거머쥔 이는 아직 없다.
한국 와인어드바이저 자격(KWAL). WSET 레벨3. 기자가 도전했고, 최종으로 합격한 자격증이다. 이 정도면 와인에 대해 진심인 편일까.
이제 또 고민에 빠질 시간이다. WSET 디플로마. 도전해볼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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