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기증관'(가칭)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 세워지는 것으로 결론 났다. 지난 4월 '이건희 컬렉션' 기증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언급한지 6개월 만이다.
이건희 기증관은 연면적 3만m²(약 9075평) 규모에 이건희 컬렉션 2만3181점을 모두 모은 독립적인 미술관 형태로 지어진다. "융·복합 문화 활동의 중심 공간"(문화체육관광부)으로서, 향후 학예실과 수장고 등 별개의 직제와 시설을 갖추게 된다. 개관은 2027년이다.
이건희 기증관의 송현동 건립이 확정되면서 장소에 대한 논란도 수그러들 전망이다. 그러나 과정에 있어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고 국민적 이슈를 통해 문화 인프라를 점검하고 문화예술의 가치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단 장관의 시각부터 잘못됐다. 문체부 황희 장관은 지난 4월 이후 줄곧 이건희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10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된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위한 서울시와의 업무 협약식'에서도 또 한번 "국가에 기증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틀렸다. 국가가 아니라 '국민에게 돌려준 것'이다. 생전 이건희 회장도 '국민'의 품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이건희 유족 측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국·공립기관에 맡긴 것 또한 국가 귀속의 개념이 아니라 전문적 관리를 통한 국민향유의 지속성에 방점이 있다. 장관은 이를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한 관료적 마인드는 곧잘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려 하지 않은 채 독선적·획일적으로 일을 처리하곤 한다. 이번 기증관 건립 경로만 봐도 그렇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것임에도 소위 '판'을 짜는 것에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소수의 정부 관계자와 관련 인사들끼리 모여 졸속으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민주적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이건희 기증관'과 관련해 제대로 된 공청회나 설명회 한 번 열지 않았다. 공모라도 진행해 달라는 지역의 요구조차 무시했다. 특히 정부가 송현동 부지 건립의 방패로 삼은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는 정부 산하 기관장과 공무원 출신이 주를 이뤘으며 정부가 선임한 위원 중 지역 인사와 시민을 대표하는 인물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며 공론을 통해 사안에 접근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
문화예술시설의 서울 편중 심화도 문제로 부각됐다. 우리나라 문화시설 2800여개 중 36%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미술관은 전국 200여개 가운데 50% 이상이 수도권이다. 여기에 기증관이 또 서울에 들어선다. 이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를 통한 문화균형발전'에 부합하지 않는다. 2022년 예산 편성의 주요 기조로 삼은 문체부의 '문화균형발전 촉진'마저 과연 진실한 것인지 의심케 한다.
송현동 부지를 선정한 이유로 '접근성'을 말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지역은 영원히 미술관·박물관 유치가 불가능해 문화균형을 강조해온 정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낸 것 외에도 컬렉션을 다시 합치는 건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시기별·성격별로 구분해 기증한 유족의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사실 역시 짚고 넘어갈 문제다. 이는 지금도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허나 아무리 말한들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민주적 절차와 국민과의 소통을 주문하는 대신 '별도 전시실' 및 '특별관' 운운하며 대통령이 나서서 방향을 규정해버린 지난 4월 이미 '이건희 기증관'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었으니 말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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