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졸레가 도착했다(les Beaujolais Nouveau arrivent)."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11월 셋째주. 와인을 마시면서 일년 중 유일하게 달력을 보고 날짜를 따져보는 날. 바로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를 맛보는 일이다.
'보졸레'는 지역 이름, 누보는 '새롭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프랑스 보졸레 지역에서 생산되는 햇와인이다. 그 해 9월 초에 수확한 가메(Gamay) 품종 포도를 4~6주의 짧은 기간만 숙성시켜 내놓는다.
당초 1951년 프랑스 법령에 따르면 원산지명칭통제를 받는 AOC 와인은 12월 15일까지 판매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후 '누보' 와인 명칭을 포함하는 몇 가지 예외가 만들어지며 보졸레 누보의 출시가 가능해졌다.
보졸레 누보가 원래부터 11월 셋째주에 나온 것은 아니었다.
처음 15년 동안은 그해 그해 상황에 따라 소비자에게 선보이는 날이 바뀌었다. 1967년부터는 11월 15일로 못을 박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떤 해에는 일요일이나 월요일이 되면서 날짜에 맞춰 운송을 보장할 수 없었고, 와인샵이나 레스토랑이 문을 열지 않아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생겼다.
그래서 정해진 기준이 날짜가 아닌 셋째주 목요일이다. 여전에 보졸레에선 11월 15일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지만 전세계 와인애호가들 입장에선 적어도 제때에 받아보고 맛볼 수 있는 지금이 좋은 셈이다. 보졸레 누보만큼 흥망성쇠를 다 거친 와인도 드물다.
대대적인 출시 행사와 함께 국내만 해도 2000년 전후로는 파티까지 열리기도 했다. 사겠다는 고객이 줄을 서는 풍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와인은 '오래 묵은 것이 제 맛'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보졸레 누보는 어느새 덜 익은 저가 와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 세계적인 축제일로 성공했던 만큼 고정 관념에 따른 어려움 역시 컸다.
보졸레 누보의 매력은 무시당했던 신선함이다. 오랜 숙성을 거친 묵직한 레드 와인이 부담스러웠던 이라면 과실향이 풍부하고 뻑뻑한 타닌은 적은 보졸레 누보가 제격이다.
보졸레 누보는 가메 품종으로 탄산 침용해 만든다. 압착하지 않은 송이를 통째로 발효하는 방식이다. 으깨지 않은 포도알 안에서 세포 내 발효가 진행되고, 그 결과 탄닌과 알코올 도수는 일반 레드와인보다 낮지만 특유의 과일풍미를 지니고 부드러운 와인이 만들어진다.
또 다른 매력은 '쉽다'는 것. 서빙 온도를 크게 따질 일도, 마실 시기를 논할 필요도 없다. 피자나 가벼운 소시지나 돼지고기 요리나 스테이크와도 잘 어울린다. 살짝 차게 해서 먹으면 굴같은 해산물과도 맛있게 즐길 수 있다.
햇와인이라지만 보졸레 누보 역시 다른 와인들 처럼 8개월에서 12개월 동안은 맛있게 보관할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보졸레 누보를 예약했다. 2021년 빈티지의 첫 맛이 기대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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