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지에서 대구미술관까지는 승용차로 대략 왕복 8시간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교통체증까지 겹치면 기약 없다. 그야말로 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강요배의 대형 작품 '수풍교향(水風交響)'과 '모던 라이프' 전에 공개된 마르크 샤갈의 작품 '인생'은 고된 여정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하다.
대구미술관은 2022년 1월 9일까지 '강요배: 카네이션_마음이 몸이 될 때'와 함께 같은 해 3월 27일까지 '모던 라이프' 전을 동시에 개최한다. 강요배 전은 대구 출신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대구시가 지난 2000년 제정한 '이인성 미술상' 수상작가전이고, '모던 라이프' 전은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해외교류전이다.
이중 지난해 수상자인 강요배의 전시는 회화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개척해온 작가의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 1992년 자신의 고향 제주로 귀향한 뒤 그린 대자연의 풍경 대작을 비롯해 대구·경산의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설치와 자소상, 영상 등이 관객을 맞는다. 출품작 대다수가 올해 제작한 신작이다.
대표작은 16미터 거대한 화폭에 광활하고 웅장한 대자연의 일렁임을 파노라마처럼 수놓은 '수풍교향'이다. 바람으로 채워진 자연에 시간과 역사를 꾹꾹 눌러 담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강요배라는 작가를 알린 민중적 역사화 '어느 가을날'과 '코발트'라는 제목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가을날'은 미군정기인 1946년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발생한 '대구 10·1 사건'을 다뤘고, 상주 지역의 비단을 푸른 쪽빛으로 염색한 설치작업 '코발트'는 1950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보도연맹 회원들을 처형한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을 주제로 했다.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맞선 민중의 저항과 그들의 고통조차 예술로 승화시킨 작업이다.
강요배 전과 함께 대구미술관 1전시실과 어미홀 두 장소에선 프랑스 매그 재단과 공동주최 및 기획한 '모던 라이프' 전이 열린다. 총 8개의 소주제로 전개되는 이번 전시엔 추상조각가인 에두아르도 칠리다를 비롯해 유연한 서정적 긴장감을 선사하는 한스 아르퉁, 검은색의 화가로 불리는 피에르 술라주 등 국내외 작가 78명의 작품 144점이 출품됐다.
미술사적으로 모두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샤갈의 '인생'은 국외 반출이 엄격해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몽환적 초현실주의 그림인 이 작품은 전제군주국이었던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하는 러시아혁명을 포함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나치의 탄압 등을 겪어야 했던 유대인 작가의 삶과 정체성, 아내 벨라 로젠벨트와의 사랑을 하나의 화면에 녹여냈다.
이 밖에도 '모던 라이프' 전에는 세계 각지를 직접 걸으며 현지의 자연물을 이용해 환경에 동화되는 특정한 모양을 만들고 이를 조각 및 사진, 글과 기호 등의 매체로 기록해온 대지미술 작가 리차드 롱,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인 알렉산더 칼더의 1950년대 작업, 그리고 그의 움직이지 않는 조각인 '스테빌'도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예전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개인전 비평을 썼던 호안 미로의 작품에 눈길이 간다.
강요배 전이 분리될 수 없는 삶과 예술, 세계의 일부인 예술을 통해 시대성과 자연성,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를 보여준다면 '모던 라이프' 전은 세계 근현대미술을 총천연색으로 친절히 소개한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이들 전시의 관람을 권한다. 과거와 현재, 장르와 국경을 넘나드는 미술의 다채로운 장면을 목도할 수 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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