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홍경한의 시시일각] 올해 최고 이슈 '이건희 컬렉션'을 둘러싼 잡음

어느 해든 무탈하게 보낸 적이 있을까만 올해 역시 '다사다난' 했다. 미술계도 그랬다. '이건희 컬렉션'을 시작으로 낙찰률 및 판매율, 관람객 모두 이전 기록을 갈아치운 미술시장, 광풍처럼 휘몰아친 대체불가능토큰(NFT)까지 한 달이 멀다 하고 다양한 이슈들이 미술계 소식란을 점령했다.

 

그 중에서도 지난 4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조건 없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은 단연 올해 최고의 화제였다.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된 국내외 근현대 미술작품 및 문화재 약2만3000점은 양적 측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데다,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일부 공개된 작품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기 때문이다.

 

미술만 떼어 말해도 가치적 측면이 컸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달된 8명의 외국 작가 작품은 기존 동일 작가 작품 대비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지만 백남순·박수근·김환기·장욱진 등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작품 1369점은 한국 미술사의 빈칸을 메우리라는 기대감을 낳기에 충분했다. 최근 알찬 기획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구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5개 공립미술관에 분산 기증된 작품들 또한 학예연구에 밑바탕이 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작품을 받은 국립 및 공립미술관들은 복권에 당첨된 듯 기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의 경우 1시간에 50여점의 작품을 봐야 하는 '주마간산' 식 관람 속에서도 전시장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많은 작품들을 이 전 회장 측이 어떻게 구입했는지에 대한 검증은 누락됐다. '세기의 기증'이라는 수사 앞에 비자금, 정경유착, 편법 세습,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등의 그림자는 존재감을 상실했고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공공문화시설에 '이건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한 공론의 장도 마련되지 않았다. 대개는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처럼 "최고의 안복(眼福)", "행복한 관장" 운운하며 감탄, 감사해 할 뿐이었다.

 

'이건희 컬렉션'을 어떤 방식으로 소장·관리할 것인가를 두고도 말이 많았다.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뜬금없는 언급에 돌연 '이건희 컬렉션'은 '(가칭)이건희 기증관' 유치 문제로 번졌으며, 이후 건립지를 놓고 지방자치단체들의 과열 경쟁이 벌어졌다.

 

말도 안 되는 삼성가(家)와의 온갖 인연을 나열하며 최적의 입지를 강조한 지자체들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미술과 미술관의 역할 혹은 가치를 이해해서라기보단 임기 중 성과에 급급한 지자체장들의 정치적 판단이 짙었기에 여론의 눈총도 따가웠다.

 

다만 우리나라 문화시설 2800여개 중 약 4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현실과 전국 200여개 미술관 가운데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자리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경청할만했다. 지역문화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지역 건립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더구나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를 통한 문화균형발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자체의 요청을 외면했다. 문체부는 지난 7월 일방적으로 서울 용산 부지와 송현동 부지를 후보로 낙점하며 '이건희 기증관'의 서울 건립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공청회 따윈 없었다. '공공재'인 문화재와 미술품 활용 방안을 소수의 정부 관료와 인사들끼리 모여 졸속으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에 결함이 있었지만 정부는 결국 지난 11월 송현동을 '이건희 기증관' 건립 부지로 최종 확정했다.

 

섣부르게 미술관 신설을 밝힌 문체부 탓에 수개월 간 헛물만 켠 지자체는 지역 무시, 공정성 결여, 불투명한 절차를 내세우며 비판을 쏟아냈다. 근래엔 시민단체들도 나서 정부의 '이건희 기증관' 건립이 원칙이나 명분 없이 이뤄지고 있다며 추진 반대를 표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건희 컬렉션'은 한편으론 사회적·문화적 갈등을 유발했으며 여러 잡음을 생산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작품을 둘러싼 이슈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잃지 않은 채 한 해를 보냈다. 내년 대선 이후 어떤 운명에 처해질지 모를 '이건희 기증관'도 논란과 함께 해를 넘기게 됐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