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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미술계에 드리운 양극화와 부익부 빈익빈

연간 약 1만4000여 회의 전시가 전국에서 열린다. 공·사립미술관만 200개가 넘는다. 4000억원대에 불과하던 2021년 미술 시장은 급성장해 매출 1조 시대를 예상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1년 예산도 대충 1000억원을 웃돈다. 이는 정부지원 미술 분야 전체 예산의 40%가 넘는 거금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대부분의 작가들과는 무관해 보인다. 전시 기회도 많고 미술관도 많으며 돈도 많다고 하는데 정작 나와는 상관없게 느껴진다. 특히 경매를 포함한 미술시장은 전례 없이 호황이라지만 내 주변 작가들의 살림살이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사실 전시 횟수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기획전이라고 무조건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도 전시의 대부분은 주목받지 못한다. 개인전도 마찬가지다. 경제력만 된다면 작가 스스로라도 전시를 열 수 있지만 1년 혹은 그 이상의 준비기간과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반해 실질적 효과는 크지 않다. 인지도가 높아야 언론도 대중도 관심을 갖는다.

 

물론 대형 상업전시나 국·공립미술관, 국내·외 대형화랑, 외국 작가의 전시라면 상황이 다르다. 잘 꾸민 세트장 같은 '이머시브아트 전'(Immersive art, 몰입형 미디어 아트) 역시 관람객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국내 전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작가들의 개인전은 가족과 지인들을 제외하곤 찾는 이 없이 조용히 열렸다 소리소문없이 문을 닫는다. 작품성은 미학적 가치를 담보할 순 있어도 관람의 척도는 아니다. 자본과 조직, 홍보력의 문제요, 이는 전시 전후 작가들의 작품 판매와도 연결된다.

 

미술시장도 그림의 떡이기 일쑤다. 약 2%에 불과한 화랑과 경매가 각각 전체시장의 80%를 점유하는 독과점 현상 속에서 그나마도 매매·낙찰 작품의 절대다수는 유명 원로 및 작고 작가, 외국 작가들의 차지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등이 발표한 경매 낙찰 순위만 해도 그들의 총액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된다. 아트페어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일반 기획전이나 개인전 대비 참여 작가의 수는 많으나 트렌드에 반응하는 작업이 아닌 한 경제력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시 이력이 훗날 작품가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작품을 매매할 수 없는 미술관에선 당장의 경제적 문제보단 참여 기회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만 해도 작가들을 위한 무대는 무척이나 협소하다. 스타 작가 모시기에 혈안이 된 그들은 외국 유명작가들에게 많은 돈을 쓰고, 민중미술 작가들과 작고 작가, 원로들에게 적지 않은 예산을 집행한다.

 

실제로 지난 7일 국립현대미술관이 발표한 2022년 전시계획을 보면 백남준 아카이브와 작가 개인사 자료전, 문신, 임옥상, 히토 슈타이얼, 피터 바이벨 등 국내·외 거장전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중국 근·현대미술을 소개하는 '20세기 중국미술전'도 준비 중이다.

 

작년에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비롯해 최욱경, 박수근 등의 작고 작가, 아이 웨이웨이, 문경원&전준호를 포함 이름 꽤나 알려진 국내·외 작가들의 전시비중이 컸다. 이전 사례를 고려할 때 당분간은 새로운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거나 기회를 제공할 것 같지 않다.

 

미술계엔 예술불평등의 구조와 그에 따른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이 고착돼 있다. 모든 면에서 쏠림현상이 심하다. 이것이 전시 기회도 많고 미술관도 많으며 돈도 많은데 정작 상당수의 작가들과는 상관없는 이유다. 미래까지 계산된 인프라 구축의 부재, 즉 아무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 인재에 관심 없고 발굴하려 하지도 않으며, 다들 그저 눈앞에 놓인 것에만 열중하니 당연한 결과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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