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Avant Garde)는 통상 기존 예술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와 예술의 유토피아를 염원한 급진적, 비전통적, 진보적인 예술운동을 가리킨다. 시대적 제한 없이 사회 개혁을 지향하는 모든 도전과 전위적 태도를 포괄하는 일시적 개념이지만, 근·현대사적 관점에선 곧잘 20세기 초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정치·사회적 혼돈과 이데올로기의 투쟁 과정에서 발화한 예술 흐름으로 정의되곤 한다.
191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이어진 러시아 아방가르드 또한 기존 예술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서유럽 아방가르드와 개념상 크게 다르지 않다. 칸딘스키의 추상과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그리고 신원시주의를 비롯한 광선주의, 구축주의, 생산주의를 포함하는 등 매우 광범위한 영역을 갖고 있음에도 러시아 아방가르드 역시 관성화로부터의 이탈이 형식과 내용의 변화를 소환한다는 내적 믿음과 코뮌주의 사회 실현을 목표로 한 10월 혁명(1917)이라는 외적 전환기에 탄생했다는 측면에서 유사한 배경을 지닌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전(~4월 17일까지)은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예술에 있어 삶의 문제를 놓지 않은 채 정치적 혁명과 예술적 혁명을 동일시했던 49명의 러시아 작가의 작품 75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서구 아방가르드와의 교류 속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태동과 전개는 물론, 스탈린의 전체주의 체제에서 퇴폐 예술로 낙인 찍혀 긴 시간 고립돼야 했던 역사적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결과적으론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충돌한 채 정치적 탄압이라는 엄혹한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 내면에 살아 생명력을 유지해온 러시아 전위 예술의 단면들을 6개의 섹션 아래 고루 펼쳐냈다.
출품작들은 러시아 민속미술인 루복과 1910년대 서유럽 모더니즘을 수용하며 생성된 초기 작품을 비롯해 러시아 추상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광선주의, 입체미래주의 및 절대주의, 구축주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중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1914~1917년의 작업 중 극도의 정신성을 담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1915)와 칸딘스키의 비기하학적 추상인 '즉흥' 연작(1909/1913/1917)은 이번 전시의 핵심 콘텐츠다. 그만큼 관람객의 주목도도 높다.
하지만 리시츠키와 로드첸코의 구축주의 작품들과 표현주의에 입각한 바실리 체크리긴의 목탄화인 '죽은 이들의 부활' 연작(1921), 알렉산드르 티실레르의 펜화인 '장애인들의 시위'(1925)도 예술과 삶을 교합하려 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와 작품에 속한다.
이외 다이아몬드 잭(1912~1913)파의 멤버였던 알렉산더 쿠프린의 '담배 파이프가 있는 정물'(1917)이나 오브젝티비즘 작가인 다비드 시텐베르크의 '푸른 화병이 있는 정물'(1919),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시작을 알린 여성 작가 곤차로바와 류보프 포포바의 '라일락'(1906) 및 '공간-역학적 구성'(1921)도 전시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작업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 미래주의자들이라는 개념을 넘어 현실의 조건을 다루는 프롤레타리아적 창조의 세계에 시선을 뒀다는 점에서 분모가 같다.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미술관 등 4개 기관의 소장품이 전시의 밑동이기에 기획의 한계가 읽히지만, 그럼에도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는 예술 변혁을 통한 사회 변혁을 꿈꾼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미학과 실천성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유효하다. 특히 시장자본주의가 하사하는 달콤한 쾌락에 취해 고급 취향에 봉사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다이소 같은 전시를 통해 예술을 논하고 상업적 성과가 곧 예술가가 획득해야 할 가치인 양 여기는 동시대에서 과연 아방가르드 정신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게 한다는 것도 이번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 지점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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