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나 농은 새로 만든 것이 없고, 구슬과 옥, 옷감은 그 지역 산물이 없어야 맑은 선비의 돌아가는 행장이다. 제주 목사로 있던 이약동이 돌아갈 때 가죽 채찍 하나만 가졌을 뿐이었는데, '이 역시 제주도의 물건이다' 말하고 관아의 문루(門樓)에 걸어두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그 가죽 채찍을 보물처럼 보관하여 목사가 새로 부임할 때마다 내걸었다."
다산 정약용의 대표 저술 '목민심서(牧民心書)'의 마지막 부분 '해관(解官, 벼슬자리를 내놓는 것) 6조'의 두 번째 내용이다.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통해 공직자로서 지녀야할 기본 덕목으로서 올바른 마음가짐과 행동지침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청렴(淸廉)은 공직자가 지녀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로 강조하고 있다. 백성들이 고통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공직자들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디스커버리자산운용(디스커버리)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최근 디스커버리 사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국 대사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 펀드에 거액을 투자한 문건을 확보했다. 문건에서 장 대사 부부는 2017년 7월 6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슷한 시기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도 이 펀드에 4억여원을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디스커버리는 2016년 11월 장 대사의 동생인 장하원 대표가 자본금 25억원으로 설립한 사모펀드 회사다. 이 펀드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와 US핀테크부동산담보부채권펀드 등을 만들어 기업은행·하나은행·IBK투자증권 등 시중은행과 증권사 12곳을 통해 판매했다. 디스커버리는 신생 운용사가 처음 내놓은 사모펀드임에도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밀어줬고, 시중에선 '장하성 동생 펀드'라고 팔려나가며 거액의 자금을 모았다. 그러다가 2019년 4월 다이렉트트랜딩글로벌 대표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 혐의로 기소되면서 자산이 동결됐고 한국 투자자들의 환매도 중단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 '사기성 펀드'에서 생긴 피해 규모는 2562억 원에 이른다.
장 대사의 펀드 연루 의혹은 환매 중단 직후 불거졌다. 신생 운용사의 펀드를 국책은행이 판매해 설정액이 급증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 핵심 인사였던 장 대사가 개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건 합리적 추론이다. 이번에 장 대사와 김 전 실장의 펀드 가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등의 특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장 대사와 김 전 실장은 법 위반 사실이 없다고 해명한 데 이어 다시 '환매를 신청하거나 환매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 만기 전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 펀드'에 투자한 일반인 펀드 피해자들과 달리 이들이 입출금이 자유로운 '개방형 펀드'에 가입한 점 때문에 일반 투자자와 달리 손실을 회피하거나 투자금을 보전받았을 '불공정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에 고위공직자의 사모펀드 투자를 제한하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경제 전반에 막강한 실권을 가진 청와대 정책실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이 재직 중 돈을 더 벌겠다고 펀드에 거액을 투자했으니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공정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이 정부의 기반 역시 공정에 대한 약속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이 촛불이 있던 그때 광장의 요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주창하던 공정이 왜 이리 허망한 일이 됐는지 씁씁함을 넘어 분노를 불러온다.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