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인사들의 도덕성을 표상했던 ‘인사 5대원칙’ 선언이 큰 박수를 받았지만 시작부터 흐지부지되다 기억의 파편이 되어가고 있다. 취임4주년 연설에서 “향후 인사청문회는 ‘무안 주기’ 식 도덕성 검증보다는 능력을 검증하는 청문회로 전환시키겠다.”는 말씀은 웬일인지 선택적 도덕성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물론 몸과 마음을 닦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더라도 코드에 맞기만 하면 끌어안는다는 뜻은 아니었을 게다. ‘도덕적 용기’는 자신에게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더라도 인간으로서 도리를 지키고 행동하려는 의지와 자세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필요조건이다.
도덕적 용기가 하찮게 여겨지면 원리 원칙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줄어들었다 하여 지도자들을 존경할 수 없는 마구잡이 사회가 된다. 그러다보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조차 그럭저럭 그렇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자괴감에 빠져 서로 아귀다툼을 하는 패거리 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외국으로부터 하찮은 국민성을 가진 종족이라고 무시당하는 참사도 벌어진다. 무엇보다 도덕적 용기를 갖춰야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사회적 수용능력(social absorptive capacity)이 고양되어 미래를 기약하게 하는 성장잠재력을 함께 배양해 나갈 수 있다.
오만과 편견에 빠져 도덕성이 실종된 인사들이 큰일을 주무르다보면 확증편향심리에 매몰되어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길을 외면하고 자칫 외형에 치우치는 전시행정으로 낭비를 초래하고도 딴청을 부린다. 소영웅심리에서 비롯되는 비도덕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다보면 백성들의 삶을 외면하면서 엉뚱한 자화자찬으로 일관하기 쉽다. 그 부작용으로 조직과 사회는 신뢰기반이 약화되어 너도나도 정신적 빈곤감과 피로감에 시달려야 한다.
도덕적 무장이 되지 않은 공직자(civil servant)들이 본분을 망각한 채 어정쩡한 능력을 과시하려다보면 교각살우의 우둔함을 저지른다. 생색을 내려다가 상처를 더욱 깊고 붉게 만들고도 자화자찬이나 일삼으니 나라는 피로증후군으로 허덕여야 한다. 예컨대, ‘소득주도성장’ 고집과 26차에 이르는 ‘부동산시장 땜질 방책’으로 영세자영업과 부동산시장이 실험실의 청개구리 모양새가 된 까닭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소영웅심리가 빚은 재앙이 아닌지 묻고 싶다.
사람의 도리를 하찮게 여기는 인사가 큰일을 맡으면 조직이나 사회의 발전이 아니라 개인이나 제 패거리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에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좀먹어 간다.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도덕성을 간과하다보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실질적 효과보다는 눈가림에 그치는 전시효과를 중시하며 낭비를 초래한다. 도덕적 용기를 갖추고 기본에 충실할 때, 위험과 불확실성 시대에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도 자연스럽게 배양된다. 무릇 세상일은 묘수나 변칙이 아니라 순리를 지켜 나갈 때, 언제 덮칠지 모를 경제적, 병리적, 군사·외교적 삼각파도를 무리 없이 헤쳐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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