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미술품 시장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작품을 구매하는 이들의 평균 연령도 하향화됐다. 그중에서도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친 말)의 부상은 동시대 아트마켓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이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인 아트바젤과 후원사인 UBS가 펴낸 '2021 미술시장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과 영국, 중국, 멕시코 등 10개국 고액 자산가 컬렉터 2569명 중 56%가 20~30대가 주축인 MZ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인 X세대가 32%로 뒤를 이었다. 20대에서 50대가 전체 컬렉터의 80%가 넘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 방문객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키아프 서울 2021 리포트'에 따르면 처음 키아프를 방문한 53.5%의 관람객 중 MZ세대인 21~40세가 60.4%로 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다음으로는 40~50대가 33.8%를 기록했다.
최근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개최된 미술장터인 '아트부산'(5월 13~15일)도 마찬가지였다. 10만여 명의 방문객 중 MZ세대의 비중이 높았다는 것이 주최 측의 판단이다. MZ세대가 소위 '불장'(상승장)을 이끄는 축이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다.
MZ세대가 시장의 주류가 되자 화랑과 경매사들은 그들이 원하는 작품을 발 빠르게 내걸었다.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미술시장 출품작들이 다양해졌다. 소유와 공유의 개념이 보편적인 MZ세대는 미술품투자 방식에도 변화를 줘 2018년 이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공동구매나 조각투자,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 등의 새로운 투자방식이 생겨났다. 또한 이들은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아티스트들을 주요 작가군으로 부상시켰다.
MZ세대에게 미술품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투자해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그들에게 미술품은 '나'를 드러내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이면서 취미가 돈이 되는 '상품'인 셈이다. 그러니 미술품과 한정판 스니커즈(운동화)를 어찌 비교할 수 있느냐는 시선은 (적어도 그들에겐) 촌스럽다.
널뛰기하는 주식과 가상자산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것도 미술품 투자의 장점으로 꼽힌다. 미술품은 각종 세금의 제약에서도 자유롭다. 수익률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투자 요소다. 온라인 플랫폼과 언론에선 매각률과 평균 매각기간, 평균 수익률 등을 심심찮게 다룬다. 작든 크든 투자 대비 이익의 비중만 놓고 보면 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 일부 거장들의 작품을 제외하면 그들이 선택한 작품들의 경우 대체로 예술성을 논하기 어렵다. 실제 MZ세대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아 없어서 못 판다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미학적, 미술사적 가치 면에서 한계가 있다. 때론 기초가 부족한 아마추어 작품이 부풀려졌다는 인상도 준다. 하지만 아트페어가 열릴 때마다 특정 세대가 메뚜기 떼처럼 몰려와 작품을 싹쓸이하다시피 한다.
MZ세대의 미술품 구입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작가 소비' 외 의미적인 게 없다. 이는 작가 및 작품의 내용 따위엔 아무 관심 없이 작품가격과 판매 여부만 묻는 현실이 잘 증명한다. 지속 가능한 투자보다 주기가 짧은 단타 형식의 미술 투자로 돈만 벌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일부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설픈 작가 작품에 '신선하다', '새로운' 등의 형용사를 남발한다. 젊은 작가들을 수혈하며 작가 소비에 동참한다. 심지어 점쟁이마냥 "이 미술품을 사 놓으면 오른다"는 식의 무책임한 전망을 내놓거나 거장의 꼬리표에 젊은 작가의 이름을 붙여 신화화하는 무리수까지 둔다. 역시 돈을 벌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술시장이 작가를 보호하지 않는 투기판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보면서도 자정 노력 없는 행태는 시장의 수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이런 양태라면 오늘의 호황은 3년을 채 못 갈 것이 자명하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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