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이 창간한 2002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국가 이벤트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을 꼽을 수 있다면, 재계에서는 '조중훈'이라는 별이 지고 그의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미군이 버린 트럭 한 대로 대한항공, 한진해운, (주)한진 등을 일궈낸 1세대가 막을 내리고 2세대 경영이 시작됐을 때, 시장이 한진에 거는 기대는 컸다. 2000년대에는 세계 무역량이 세계적인 시장개방과 자본이동의 확대로 증가하고 기술 확산에 따른 산업 내 무역의 확대 등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진그룹은 창업주 타계 후 조양호 회장이 2003년부터 한진그룹 회장직과 대한항공을, 차남이 한진중공업을, 3남이 한진해운을, 4남이 메리츠금융을 각각 맡아 경영하게 됐다.
◆"수송은 인체의 혈관"… 우여곡절 겪으며 성장하는 한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송은 인체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담당해왔다. 공간의 이동은 삶의 필수적 요소이고, 시간의 단축은 우리의 영원한 숙제다." 조중훈 창업주가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에 남긴 말이다. 한진그룹이 내세우는 단 한 단어가 있다면 바로 창업 이념인 '수송보국(輸送報國)'일 것이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주)한진은 그 꿈을 이룬 기업들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한진해운도 2000년대 초에는 어닝서프라이즈 기사에 자주 이름을 올렸고 대한항공은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의 힘을 보여주며 한국인의 자부심이 되기도 했다.
조양호 회장 취임 1년 후인 2004년 한진그룹은 대한항공 35주년을 맞아 '세계 항공업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항공사'라는 새로운 비전 'Excellence in Flight'를 선포하고 발전에 박차를 가한다. 이미 글로벌 얼라이언스 '스카이팀'의 창립 멤버로 19개 글로벌 항공사들과 협력 관계를 맺기 시작했던 대한항공은 2018년에는 미국의 델타항공과 조인트 벤처를 통해 또 한 번 도약에 성공하는 쾌거도 이뤘다. 특히 2001년에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아시아 항공 시장의 중심부에 있어 천혜의 허브 조건을 과시하며 이는 대한항공의 글로벌 시장 내 입지 확보 여건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인천국제공항의 지리적 이점과 독보적인 서비스를 토대로 환승 수요를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탑승수속 시간을 대폭 줄였으며 새로운 개념의 라운지를 개설하는 등 여객 운송 서비스를 차별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천화물터미널은 2002년 말까지 2단계 확장을 거쳐 연간 화물처리 능력을 103만 톤으로 늘려 김포 화물터미널의 46만4000톤의 2배 수준으로 처리능력을 확대했다. 이어 3단계 확장공사에 들어가 2005년 2월 연간 화물처리 능력을 135만 톤으로 늘렸고 이는 단일 항공사가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화물터미널이었다. 2005년 7월에는 IATA가 선정하는 '2004년 세계 항공수송 통계(WATS)' 국제 항공화물 수송실적 부문 1위에 올라 항공화물 강자의 면모를 세계에 알렸다. 항공화물운송은 지금 같이 항공업계가 어려운 때에도 대한항공이 버틸 수 있는 강한 기반이 돼주고 있다.
하지만 한진해운의 길은 달랐다. 조중훈 창업주의 삼남인 조수호 회장이 2002년부터 경영을 맡아 순항하던 한진해운은 2006년 조 회장 별세 뒤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최고경영자(CEO) 독자 경영 체제로 바뀌게 됐다. 시대는 한진해운에 엄혹했다. 때마침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동성이 급경색 됐고 회사는 어려워져 갔다. 시숙인 조양호 한진 회장이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2014년 1조7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며 그해 4월 한진해운 회장직에 취임했다. 그렇게 조 회장이 선친의 꿈을 지키려 애썼지만 결국 역부족이었고 그렇게 한진해운은 2017년 2월 파산 선고를 받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세계 7위까지 올랐던 한진해운의 끝이었다.
여기에 선친을 이어 '한진호'를 이끌어오던 조 회장은 기업 내 주요 보직을 맡고 있던 두 딸의 '갑질 문제'를 시작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이어 '오너 일가 갑질 문제'에서 촉발된 각종 혐의까지 더해졌다. 결국 2019년 4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적용되면서 조양호 회장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가 회장이 된 지 20년만이었다.
◆'조원태호' 화물로 다시 날고, 아시아나 합병에 힘 쏟는다
조양호 회장을 이어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을 이끌게 된 사람은 장남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겸 대한항공 대표이사다. 3세 경영의 시작을 알리며 이목을 끈 가운데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두 차례 경영권 분쟁을 벌였지만, 결론적으로 조원태 회장이 승기를 잡으며 한진그룹의 명실상부한 리더가 됐다.
이런 와중에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처해 이전에는 없던 봉쇄 상황에 처했고 사람이 오가는 항공여객은 큰 타격을 입었다. 대한항공도 예외일 수는 없었지만 꾸준히 다져온 물류망은 어려움 속에 빛을 발했다. 대한항공의 2021년 4분기 화물사업 매출은 2조1807억원을 기록하고, 올해는 별도 기준 1분기 영업이익이 788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3.4% 증가하는 쾌거를 이뤘다. 특히 화물노선 매출은 2조1486억원을 거두며 호조를 이어갔다. 대한항공은 호실적 속에서도 화물 시장의 불확실성을 인지하며 빠르고 탄력적인 노선 운영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여기에 항공업계 리오프닝으로 여객 정상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또 하나, 대한항공이 국내를 넘어 국외까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아시아나항공 합병 건' 때문이다. 2020년 11월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하고 올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조 회장은 "2022년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합병과 함께 대한항공이 글로벌 메가 캐리어로 나아가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단순히 두 항공사를 합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항공업계를 재편하고 항공역사를 새로 쓰는 시대적 과업인 만큼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생각"이라고 언급해 의지를 다지고 현재 중국·미국·유럽 등 해외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두 대형항공사(FSC)의 합병이 이뤄진다면 우리가 만날 항공업계의 미래는 달라질 전망이다. 또 FSC 산하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재편도 항공편을 이용하는 국내 이용객과 한국을 찾는 해외 이용객의 편의를 달라지게 할 것이다. 아직은 심사가 남아 두 FSC의 합병을 완벽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결과에 따라 국내 항공업계의 판도가 바뀌는 것만큼은 확실하기에 대한항공이 '수송보국'의 기업사를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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