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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창간 20주년] 뉴트로의 ESG,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

[뉴트로의 E(Environment)] ESG,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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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처음 접한 사람이 농담 삼아 내놓고 하던 "MSG 하고 다른 것이냐"는 질문이 요즘은 쑥 들어갔다. 용어 이해도가 높아졌는 지, ESG가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는 정도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고등학생까지 포함해 다양한 집단의 사람을 ESG를 매개로 만나면서 자주 질문을 받고 거의 매번 말해야 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왜 갑자기 ESG가 부상했냐이고, 또 하나는 ESG가 언제까지 갈까이다. 두 질문의 공통점은 ESG가 혹시 일과성 유행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ESG가 결코 갑자기 부상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이 흐름은 쭉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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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G는 '갑툭튀'가 아니다

 

ESG 하면 "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한다"에 이어 이것이 주로 기업의 비재무정보에 해당한다는 설명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비재무정보를 어디에 쓸까. 여기서 '사회책임투자(SRI)' 또는 '지속가능투자'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다. SRI는, 수익률만을 고려한 기존 대부분의 투자와 달리 수익률과 함께 사회책임까지 살펴보겠다는 투자철학이다. 자본을 보유한 자산운용사 등 금융기업이 투자대상 기업을 고를 때 재무성과와 더불어 비재무성과를 잣대로 채택한 것이 SRI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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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래리 핑크란 사람이 언급될 시점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핑크가 2020년 초 연례서한에서 ESG투자를 천명하며 세계적으로 ESG 바람이 불었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다. 예컨대 얼핏 들리기로 ESG 바람의 원인을 BBC로 설명한다는데, 두 개 B 중 하나가 블랙록(BLACKROCK)이다. 나머지 B는 바이든(Biden)으로 미국 대통령이고, C는 코로나를 뜻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타당한 분석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BBC 같은 이러한 '용어 마케팅' 자체가 ESG 바람의 세기를 보여줄 뿐이다.

 

블랙록의 CEO 핑크의 선언은, 그 선언이 ESG 확산을 촉발했다기보다는 ESG 확산의 화룡점정이 그 선언이라고 봐야 한다. 조사 결과 블랙록 뿐 아니라 세계 10대 자산운용사 모두 ESG투자를 도입했다. 물론 그 ESG투자라는 것이 실제 내용은 그저 포장지 변경에 불과한 것일 수 있지만, 설령 포장지 변경이라 하여도 그 의의가 전혀 작지 않다.

 

블랙록의 ESG투자 선언은, 자본주의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자산운용업계라는 것이 어떤 곳인가.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더 높은 수익률이라면 영혼까지 파는 업종이다. 그곳까지 ESG를 표방한 상황(ESG는 '비재무'다!)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대적인 전환 기대마저 품게 한다. 블랙록을 필두로 한 세계 자산운용업계의 ESG투자 고려는 비유로서 빙산의 일각에 해당한다. 빙산의 일각은 떠오르고 싶어서 떠오른 게 아니라 그 아래 거대한 빙하가 존재하기에 어쩔 수 없이 떠올랐다.

 

그 말은 ESG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18세기 감리교 존 웨슬리까지 올라가는 SRI의 깊은 뿌리,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논의 등 지속불가능한 우리 문명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의 도도한 흐름이 축적돼 마침내 ESG로 분출했다고 봐야 한다. 즉, ESG열풍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시작이다.

 

유의할 것은, ESG란 용어 자체는 자본시장, 그것도 투자와 관련된 것이지만 시대정신의 변화 과정에서 빙산의 일각으로 떠오른 ESG는 자본시장 범위를 넘어선다. 투자영역에서 시작된 ESG가 일종의 미러링 방식으로 기업경영에 급속하게 반영된 뒤 시민생활과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ESG투자(자본시장)→ESG경영(경제·산업계)→ESG사회(시장·공공·시민사회)로 빠르게 넘쳐흐르고 있다. 이 추세를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가치' 에너지가 CSR, 사회책임경영과 지속가능경영, ISO2600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파리기후협약 등으로 이어지며 오랫동안 축적된 가운데 기후위기가 본격화하였고, 여기에 코로나19로 비대면 사회가 도래하고 4차산업혁명의 파고까지 덮치면서 ESG시대라는 불가피하고 불가역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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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바른 일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널리 인용되는 "사악해지지 말 것(Don't be evil)"은 구글 기업행동강령을 대표하는 문장이다. 행동강령의 서문에 포함돼 구글의 모토처럼 사용됐다. 대략 2000년 무렵 사용되기 시작한 "Don't be evil"은 기업의 행동강령 치고는 사실 파격적인 문장이었다.

 

"Don't be evil"은 구글의 지배구조가 변하면서 모토로서 위상의 하락을 겪었다. 구글이 지주회사 격인 알파벳의 자회사가 되면서이다. 구글이 알파벳과 모토를 같이 쓰면서 2015년부터 "Don't be evil"은 "올바른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로 바뀐다. 형식상 구글이 자회사로 내려앉았듯 "Don't be evil" 또한 행동강령의 서문에서 삭제된다. 삭제를 두고 구글 기업 철학의 변경을 뜻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견이 분분했다. 정확하게는 서문에서 자취를 감추고 강령의 마지막으로 자리를 옮겼으니 삭제가 아니라 '격하'라고 해야겠다.

 

논자에 따라 "Do the right thing"이 더 진취적이라고 판단할 법하다. "Don't be evil"이 '네거티브'인 반면 "Do the right thing"은 '포지티브'이며 "Do the right thing"과 함께 사용되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라(Imagine the Unimaginable)"는 모토 또한 '포지티브'이다.

 

'포지티브'가 긍정적이긴 하다. 내 판단으론 그렇다고 '네거티브'보다 꼭 더 나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모토의 이러한 변화에서 한때 CSR 대신 공유가치창출(CSV)을 주장하며 CSV가 CSR보다 한 단계 진전된 개념이라고 우기던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CSR 없는 CSV는 사악해지는 것(Be evil)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Don't be evil" 없는 "Do the right thing"은 사악해지면서(Be evil) 돈 버는 걸 정당화하는 우회로를 열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극단적인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말이다.

 

"Don't be evil"은 일종의 직원행동주의로 이해될 수 있다. 직원은 회사의 핵심 이해관계자의 하나이다. 따라서 직원행동주의는 주주행동주의 혹은 주주주의에 맞선 이해관계자(행동)주의의 일종이다. 주주를 경영의 중심에 놓은 방법론이 얼마나 쉽게 탐욕에 휘둘렸는지 역사에서 자주 경험하였다. ESG전환이 주주자본주의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대체하는 역동성과 결합하면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런 관점에서 "Do the right thing"은 "Don't be evil"에 비해 퇴행이다.

 

그것만으로 훌륭한데, 너무 가혹하고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고? 더 엄격해져도 좋다. ESG, CSR, SDGs, 파리기후협약 등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진보로 평가하는 움직임이, 작금의 엄중한 상황에 비해 기실 너무 미진한 방법론이고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ESG자본주의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한다는 발상은, 엄중한 상황인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가 만들어놓은 현 체제는, 그 정도의 변화조차 간신히 받아들일 수 있기에, 현실적으로 'ESG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지속가능사회'가 아마 그나마 수용되어 실현될 수 있는 방법론일 것이다.

 

결론을 맺자. ESG는 '갑툭튀'가 아니고 근본적 패러다임 쉬프트를 이끌 수 있다. 동시에 ESG가 기후위기로 대표되는 엄중한 사태에 비추어 안이한 해법인 것이 사실이다. 다른 방법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아쉬운 대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 일이 ESG이다. 우리 사회가, 인류 문명이 지금 행해야 하는 정말 최소한의 일이다./안치용 ESG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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