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프리즈'(Frieze, 이하 프리즈)는 세계적인 미술품 장터다. 이름값 면에선 또 하나의 글로벌 페어인 '아트 바젤'(Art Basel) 못지않다. 2003년 설립된 런던을 중심으로 매년 뉴욕(2012~), 로스앤젤레스(2019~) 등에서 모두 4개의 아트페어를 개최한다.
프리즈가 서울에 입성한다. 형식은 공동개최다. 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하는 국내 최대의 미술품 마켓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이하 키아프)와 향후 5년간 함께 한다. 올해는 9월 2일부터 삼성동 코엑스에서 닷새간 진행된다. 17개국 164개 화랑, 20여 개국 110여개 화랑이 각각 출사표를 던진다. 두 행사에 참여하는 화랑만 280여개에 달한다. 국내 아트페어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다.
한국화랑협회는 프리즈와의 공동주최로 들떠있다. 미술시장 전체가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한국작가들의 해외 진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프리즈 또한 '공동의 노력', '협력', '존중' 운운하며 키아프의 바람에 부응하는 모양새다. 적어도 겉으론 그렇다.
그러나 말이 공동개최이지, 동등한 자격으로 관계하고 있다는 근거는 별로 없다. 현재로선 한 장의 티켓으로 같은 시기에 펼쳐지는 두 아트페어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게 전부다. 공동기획은 아직 드러난 게 없다. 더구나 프리즈는 참여 갤러리 리스트를 단독으로 발표해 '키아프 패싱' 논란까지 낳았다.
프리즈와의 공동개최로 상기된 키아프와는 달리 일각에선 오히려 키아프의 위축을 우려한다. 세계적인 컬렉터나 유명 화랑의 프리즈 쏠림 현상으로 한국 미술시장의 허약함만 증명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대 요소 중 하나인 프리즈를 통한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도 불확실하다. 그동안 한국에 상륙한 외국계 화랑들만 해도 처음엔 대부분 우리나라 작가들을 발굴 및 소개하겠다고 했지만 명분일 뿐 가시적 결과는 빈약했다. 국내 컬렉터들이나 그들이나 외국 작가 작품을 선호하는 흐름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렇잖아도 작은 시장을 점유해 군소 화랑들의 생존 위기까지 불러왔다.
프리즈와의 공동개최는 아시아 최고 미술시장으로 거듭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허나 자칫 '판'만 깔아주고 실제론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상황도 배제할 순 없다. 따라서 키아프 측은 지금부터라도 짝사랑은 잠시 접고 한국시장에 대한 프리즈의 기여 의지부터 헤아리는 게 바람직하다. 1조니 2조니 하는 숫자에서 벗어나 질적 팽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묘안을 짜내야 한다.
한편 프리즈는 공동개최지로 왜 하필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이 아닌 서울을 선택했을까. 이에 대한 프리즈의 설명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프리즈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풍성한 예술현장, 세련된 작품소장 경향, 훌륭한 예술가들을 배출한 역사" 등을 이유로 꼽았다.
언뜻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을 연상케 하는 이 발언은 품위 있게 보이기 위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아시아권 시장 진출을 위한 새로운 교두보로써 한국을 택했다는 게 여러모로 타당하다. 홍콩은 정세 불안과 정치적 변수가 너무 많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와 지리적·정서적으로 가깝지만 구매력이 높은 한국과 일본, 중국을 아우르기엔 거리감이 있다. 상하이는 관세가 높으며 일본은 지진이라는 리스크가 있다.
한국은 위와 같은 환경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경제적 부를 쌓으면서 독자적 가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프리즈가 키아프에 공동개최를 제안한 배경일 수 있다. 특히 서울은 자본 가치를 숭배하는 도시다. 결국 이익의 문제와 관련이 깊은 셈이다.
아트페어는 철저히 시장논리에 움직인다. 고급 콘텐츠인 미술품으로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다. 프리즈라고 다를 리 없다. 한국이 국제적인 아트페어를 소화할 수 있는 곳인지 간만 보다 떠날지 아니면 지속성을 지닐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우리도 공동개최에 따른 권리를 주장하고 손익을 보다 냉정히 따질 필요가 있다. 잘못하면 우리만 흥분해서 북 치고 장구 치다 끝날지도 모른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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