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만원의 행복'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예인 출연자에게 만원 한 장을 주고 일주일을 버티게 하면서 만원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프로그램이다. 방영 당시 '만원의 행복' 출연자는 서울 시내 정육점에서 삼겹살 1인분(200g)을 8000원에 구매했다. 2022년 7월 현재 서울에서 삼겹살 1인분 평균 가격은 1만7783원으로 당시보다 두 배 넘게 올랐다. '만원의 행복' 출연자가 지금 다시 방송을 찍으면 어디까지 생활이 가능할까. 당장 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현재 서울에서는 냉면 한 그릇(1만269원)도 채 사서 먹지 못한다. 삼겹살 1인분(200g·1만7783원)을 주문하면 절반 밖에 나오지 않는다. 짜장면(6262원)에 김밥 한 줄(2946원)로 두 끼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
먹고 사는 민생 물가가 무섭게 뜀박질하면서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비명들이 터져 나온다. 직장인들이 만원으로는 웬만한 점심을 먹기가 힘든 지경이 됐다. 구내식당이 붐비고 분식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런치플레이션(Lunch+Inflation)'이 닥친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찾는 치킨도 배달료 포함해 서민들의 심리적 저항선이던 2만 원이 무너진 지가 얼마 안 됐는데 그새 3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 6월 국내 소비자 물가는 1년 전보다 6.0% 올랐다. 6%대 소비자물가는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이 국내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확산되면서 전체 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돌파하면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추가로 가중시키고 있는 점도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미국 물가도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노동부는 6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보다 9.1% 올랐다고 13일(현지시간) 밝혔다. 81년 12월 이후 최대 폭이었던 5월(8.6%)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도 잡히지 않는 물가에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두 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은행도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최대 과제라는 점을 깨닫고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2.25%로 한꺼번에 0.5%포인트 인상했다. 한은의 첫 '빅 스텝 인상'이자, 첫 3연속(4·5·7월) 인상 결정이다. 기준금리가 연 2.25%를 기록한 건 2014년 8월 이후 8년 만이다. 이날 한은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경기 침체 우려를 감수하더라도 일단 치솟는 물가 잡기가 먼저였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2~3차례 추가 금리 인상도 예고했다. 한은이 사상 첫 '빅 스텝'을 단행하면서 대출 금리 인상 공포감이 번지고 있다. 특히 예상보다 빠른 금리 인상 속도에 빚을 몽땅 끌어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들어간 투자자들은 머리가 복잡해진 상황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암 치료를 위해 '화학요법'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암(인플레이션)을 치료하기 위해 독한 항암제(금리 인상)를 쓰면 암세포 뿐만 아니라 신체 다른 부위(경제성장·국민들 삶)까지 부작용을 겪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만큼 가계와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에게 고통스러운 치료법이다. 사실 인플레이선과의 전쟁에서 이겨도, 져도 그 상처는 크게 남는다. 그나마 얼마나 빠른 시간에 인플레이션을 잡아주느냐가 국민 고통을 덜어주는 것임을 정부나 중앙은행이 헤아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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